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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뒤, 국가폭력, 고문 공장에 붉은 꽃이 피었다

등록 2020-06-10 11:43수정 2020-06-10 17:07

옛 남영동 대공분실서 6·10 민주항쟁 기념식 거행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인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10일 오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숨진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 창문에 이번 기념식의 슬로건 ‘꽃이 피었다’를 형상화한 붉은 장미가 매달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인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10일 오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숨진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 창문에 이번 기념식의 슬로건 ‘꽃이 피었다’를 형상화한 붉은 장미가 매달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곳에 붉은 꽃이 달렸다. ‘고문 공장’, ‘국가폭력의 공간’, ‘치밀하게 설계된 악의 공간’ 등으로 불렸던 곳. 박종철 열사와 김근태 전 의원을 포함해 수많은 민주 인사들을 삼켰던 곳. 이젠 민주주의 공간으로 탈피를 준비하는 곳. 꽃은 33년 전 박 열사가 물고문 끝에 숨졌던 509호 조사실 창밖에 붉게 피었다. 고문을 가리고, 고통을 견디지 못한 투신을 막으려 좁고 길게 난 그 창문 위에.

제 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은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에서 열렸다. 붉은 벽돌 건물을 마주한 마당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 단체 대표와 유공자 등이 자리했다. 현직 대통령이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2007년 20주년 기념식 때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서울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뒤 3년 만에 다시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제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을 마친 뒤 509호 조사실을 살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제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을 마친 뒤 509호 조사실을 살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남영동 대공분실은 유신 정권 때인 1976년 건축계의 거장 김수근의 설계에 따라 완공됐다. 애초 5층 건물은 1983년 전두환 정권 때 7층으로 증축됐다. 조사실까지 지나치는 모든 문은 철문으로 되어 고립감과 공포감을 극대화 한다. 이곳에서 1985년 김근태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22일 동안 살인적인 고문을 당했다. 1987년 1월14일에는 박종철 열사가 509호실에서 물고문 끝에 숨졌고, 이는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2년 전 이곳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문 대통령은 기적 같다고 감회를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 불행한 공간을 민주주의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것은 마치 마술 같은 위대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엄혹한 시절을 이겨내고 끝내 어둠의 공간을 희망과 미래의 공간으로 바꿔낸 우리 국민과 민주 인사들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981년 전민노련 사건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연행돼 고문 당한 유동우씨와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회장, 조순덕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상임의장 등과 함께 행사장에 들어섰다. 2012년 개봉한 영화 ‘남영동 1985’에서 김근태 의장 역할을 했던 배우 박원상씨는 경과 보고 낭독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며 “코로나19 바이러스 탓에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서로를 의심하며 경계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차별로 번지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통해 서로를 붙잡아야 한다”고 연대를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 남영동 인권기념관에서 열린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에게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 남영동 인권기념관에서 열린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에게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행사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민주화 유공자들에게 한 훈·포장 수여식이었다. 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조영래 변호사, 지학순 주교,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 등 12명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의전은 경찰 의장대가 수행했다. 배은심씨는 세상을 떠난 이소선 여사와 박정기씨에게 ‘33번째 6월10일에 보내는 편지’를 낭독해 숙연하게 했다. 배 씨는 “이소선 어머니는 전태일이 옆에 가 계시고, 종철 아버지도 아들하고 같이 있어서 나 혼자 오늘 이렇게 훈장을 받습니다. 나 혼자 이래도 되는 건가 싶네요. …내가 여기서 감히 훈장을 받아도 되는 건가 싶습니다. 종철이 아버지도 이런 날 보고 ‘거서 뭐 하고 있는 거요’라고 하실 거 같아요’라고 편지를 읽었다. 가수 윤선애 씨의 ‘그날이 오면’, 정태춘 씨의 ‘92년 장마 종로에서’라는 민중 가요 공연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기념식 뒤 약 15분 가량 509호 조사실을 찾아 헌화하고 묵념했다. 문 대통령은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했던 욕조를 보며 “이 자체가 그냥 처음부터 공포감이 딱 온다. 철저한 고립감 속에서 여러가지를 무너뜨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민갑룡 경찰청장이 참석해 국가 폭력을 사과하는 의미를 더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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