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자. 사진은 지난 2018년 4월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과의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의 깜짝 발탁을 두고, 강력한 남북관계 개선 의지와 함께 미국 정부에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하는 신호가 담겼다는 해석이 여권 핵심부에서 나온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5일 기자들과 만나 박 후보자를 발탁한 것은 온전히 문재인 대통령의 결심이었으며, 발탁에는 다양한 층위의 메시지가 함께 담겼다고 말했다. 그는 “박 후보자는 다양한 경로에서 (안보라인에 기용해야 한다는) 추천이 들어왔다”며 “그를 국정원장 후보자로 가닥을 잡고 교통정리를 한 것은 오로지 문 대통령의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은 박 후보자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서라고 꾸준히 촉구해온 점을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관광부 장관이던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남북관계 경색의 원인은 미국이 제공한 것” “통일부 장관은 미국이 너무 지나치게 (북한을) 제재하고 문제가 있을 때는 미국과도 한바탕해야 한다”며 적극적 ‘자주노선’을 견지한 바 있다. 실제 박 후보자는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한-미 공조가 필수지만, 우리 정부가 미국의 의지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 때문에 청와대 안팎에선 “박 후보자를 국정원장으로 낙점한 데는 ‘남북이 적극적으로 속도를 내서 관계 개선에 나설 테니 미국도 좀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라’는 촉구성 메시지가 담긴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박 후보자를 국정원장에 기용하기로 결심한 시기가 지난달 17일 남북관계 원로들과 오찬을 한 직후라고만 밝혔다. 오찬 당시 박 후보자는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면서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청와대는 박 후보자에 대해 이후 2주가량 인사 검증을 진행하면서 보안을 유지하는 데 극도로 신경을 썼다. 청와대 안에서도 극소수 관계자들만 그의 지명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평소 여러 방송에 출연 중이던 박 후보자는 지명 발표 15분가량 전까지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방송에서 “그동안 감사했다”는 ‘의미심장한’ 인사말을 했지만 아무도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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