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제75회 유엔총회에서 믹타(멕시코·인도네시아·한국·터키·오스트레일리아 5개국 지역 간 협의체)를 대표해 화상으로 연설하는 모습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 회의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문 대통령이 22일 유엔총회 영상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 카드를 다시 꺼내든 데에는 집권 후반기 궤도를 이탈한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상호 신뢰를 보장할 제도적 틀을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종전선언은 지난해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노이 정상회담 전 문 대통령은 북-미 적대 관계 해소와 비핵화 진전의 필수 조건으로 종전선언 실현을 강하게 주장했다. 심지어 2018년 9월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는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북한이 약속을 어기면 다시 제재를 강화하면 그만이다”라고 ‘스냅백’ 조건까지 걸면서 종전선언 성사에 공을 들였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 신뢰가 허약해진 상황에서 종전선언이라는 질적 도약이 이뤄져야 지금의 답보 상태를 타개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는 올해 초부터 북-미 대화 진전을 기다리다 남북관계 개선에 소홀했던 점을 인정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는 “남북이 우선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며 △철도 연결 △공동 유해발굴 △이산가족 상봉 △비무장지대 국제평화지대화 등을 제안했다. 6~7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서훈 국가안보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 안보라인을 교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는 종전선언이 북한이 가진 불신을 털고, 우리 정부가 제안한 각종 평화 경제 사업을 실현시킬 동력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미국이나 중국 등 주변 당사국들에 직접적으로 종전선언을 촉구한 지난해와 달리, 이번에는 유엔과 국제사회에 관심과 도움을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전쟁 이상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코로나 위기 앞에서 이웃나라의 안전이 자국 안전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더 깊이 인식하게 됐다”며 코로나 이후 시대에 “한반도 평화가 동북아 평화를 보장하고 세계 질서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용성이 강화된 국제협력’을 기반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과 협조, 나아가 국제사회의 우호적인 여론 조성을 촉구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동북아시아에 방역·보건 협력체를 함께 꾸리자며, 북한에도 손짓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확진자가 없다고 공표했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코로나 탓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한다. 문 대통령은 2년 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와 다자협력체 참여를 북한에 제안했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제안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 뒤 지난 3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남북, 북-미 대화에 응하지 않는 상태다. 더구나 11월 미국 대선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북한이 현재 기조를 바꾸지 않은 채 상황을 주시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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