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속 부처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받들어달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극한 대립에도 내내 침묵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입을 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모든 공직자는 오직 국민에게 봉사하며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가는 소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소속 부처나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받드는 선공후사의 자세로 위기를 넘어, 격변의 시대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과거의 관행이나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급변하는 세계적 조류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 진통이 따르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개혁과 혁신으로 낡은 것과 과감히 결별하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가질 때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굳은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 탄소중립 2050, 권력기관 개혁, 규제 개혁 등은 위기의 시대, 대한민국의 생존을 넘어 새로운 미래로 도약하려는 변화와 혁신의 노력”이라고 말했다.
언뜻 보면 공직자의 자세에 대한 원론적 당부로 들렸지만 문 대통령은 뉴딜, 탄소중립 등의 과제에 ‘권력기관 개혁’을 함께 넣음으로써 ‘소속 부처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받들어야 하는’ 주체가 검찰임을 시사했다. 추 장관의 검찰총장 직무 배제 등에 항의하며 집단행동을 하는 검사들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검찰에 대한 비판이긴 하나,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던 과거 사례나 최근 한계치에 다다른 ‘추-윤 갈등’ 상황을 감안하면 이날은 진의를 한참 에둘러 표현하는 ‘저강도 발언’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결단하기 어려운 엄중한 상황임을 반영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정세균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도 “저도 고민이 많다”는 말로 답답한 심경을 표현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윤 총장 징계가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데엔 공감했으나, ‘추-윤 동반사퇴’ 등 구체적인 해법에 대해선 확답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이날 문 대통령과 정 총리의 주례회동 내용 일부가 외부로 알려진 것은 정 총리가 총대를 멜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아무리 법적으로 정해진 징계 절차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문 대통령이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직접 해임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모양새다. 그렇다고 이미 검찰의 신뢰를 상실한 추 장관을 그대로 놔둘 수도 없다. 총리실의 관계자는 “윤 총장도, 추 장관도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게 정 총리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대통령 대신 총리가 나서 추 장관의 동반퇴진을 지렛대 삼아 윤 총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역할을 자처한 셈이다.
이완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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