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본관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올해 신년사에서 ‘회복’과 ‘포용’을 국정운영의 열쇳말로 내세웠다. 지난해 전세계를 할퀸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한 생명과 안전의 위협, 피폐해진 민생을 보듬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8~2020년 역대 신년사에서 강조했던 검찰개혁 추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집권 5년차에 접어든 만큼 개혁과 변화보다는 코로나19의 극복과 민생경제에 집중하겠다는 기조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신년사를 통해 “코로나와의 기나긴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면서도 “새해는 분명히 다른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신년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회복’으로 모두 15번이었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국민의 고통과 경제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회복’의 구체적 약속으로 코로나19 백신 전국민 무료 접종을 제시했다. 그는 “마스크에서 해방되는 평범한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우선 순위에 따라 순서대로 전 국민이 무료로 접종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의료인력 등 우선접종자들에게 한해 무료접종을 검토해왔다.
문 대통령은 이어 “국가 경제가 나아지더라도 고용을 회복하고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입은 타격을 회복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코로나로 더 깊어진 격차를 줄이는 포용적인 회복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0조5천억원의 일자리 예산의 1분기 조기 투입, 특수고용직 고용보험 적용 확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상병 수당, 전국민고용보험제도 등 기존에 밝혔던 정책 추진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1년 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던 문 대통령은 이번엔 부동산 시장 불안에 대해 “송구”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썼다. 문 대통령은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이다. 주거 안정을 위해 필요한 대책 마련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특별히 공급확대에 역점을 두고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다양한 주택공급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겠다”고 했다.
항상 문재인정부의 핵심 개혁과제로 등장했던 검찰개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곧 출범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를 염두에 둔 ‘권력기관의 제도화’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권력기관 개혁은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일”이라며 “지난해 오랜 숙제였던 법제도적인 개혁을 마침내 해냈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답방 등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적극 피력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남북관계엔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 않았다. “언제든, 어디서든 만나고, 비대면의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우리의 의지는 변함없다”고 강조하면서 코로나 방역 및 보건의료 협력을 기반으로 한 ‘평화·안보·생명공동체’를 일구자고 했다.
문 대통령이 회복과 포용을 넘어 제시한 비전은 ‘선도국가’로의 도약이었다. 기후위기를 극복할 방편으로 ‘2050 탄소중립’ 추진계획을 구체화하는 한편, 수소 경제와 저탄소 산업으로 세계 시장을 주도해가자고 제안했다. 또한 지난해 국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둔 방탄소년단(BTS)·블랙핑크·영화 <기생충> 같은 케이(K) 콘텐츠를 비롯해 손흥민·류현진·고진영 선수 등 체육인들을 언급하며 소프트파워에서도 선도국가로 위상을 다지자고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케이(K) 방역의 성공과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의 성장률, 국민소득 증가, 주가지수와 주가 상승률 등을 코로나 역경 극복의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수치로는 우리 사회에 심화되고 있는 자산 양극화와 불평등, 오이시디 국가 중 최악의 산재사망률 등의 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회복’과 ‘포용’의 의지를 보여주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임기 초반 문 대통령의 힘은 공감과 소통이었다. 현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극심한 만큼 정부가 이에 대한 책임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다가갔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