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강창일 주일대사 신임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대법원의 박근혜 전 대통령 최종 선고가 나온 뒤 ‘사면’에 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이 둘이나 감옥에 있는 부담스러운 국면을 임기 말까지 이어가기는 어렵다는 ‘정치적 상황’과 사과와 반성이 없는 사면은 안 된다는 ‘다수 여론’ 사이에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침묵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달 안에 있을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면’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대법원 선고가 나오자마자 사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가 않다. 대통령에게 별도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 최종 선고와 관련해서는 “국민의 촛불혁명, 국회의 탄핵에 이어 법원의 사법적 판단으로 국정농단 사건이 마무리된 것으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정신이 구현된 것이며,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과 발전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전직 대통령이 복역하게 된 불행한 사건을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의 이날 논평은 충분히 예상된 수준이었다. 청와대는 최근 여러차례 대통령의 사면 관련 입장 표명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면이 정치권의 민감한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대법원 선고 직후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히는 건 ‘결론이 무엇이든’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사면 요구 나오지만 다수 국민 여론 부정적이라 ‘고심’…조만간 ‘결단 불가피’ 관측 나와
다만 사면과 관련한 청와대의 전반적 기류는 전날 최재성 정무수석의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최 수석은 1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은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동의)을 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다. 여론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대통령이 ‘정치적 의지’만으로 결단을 내리기는 어려우며, 사면이 가능하려면 국민의 차가운 여론을 돌리려는 당사자들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사면의 선행 조건을 앞세우는 방식으로 시간을 벌었지만, 여론과 별도로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압박은 점차 커질 수밖에 없다. 야권은 ‘여론을 핑계 삼아 통치권자의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고 비판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새해 초 사면론을 꺼내 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포함해 여권에서도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올해 국정기조를 ‘포용’으로 설정해둔 상황에서 야당과 두 전직 대통령 지지층의 사면 요구를 마냥 외면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여권 일각에선 청와대가 추진하는 대통령과 야권 수뇌부의 회동에서 사면 요구가 나오면, 문 대통령이 이를 대승적으로 수용하는 형태로 매듭을 푸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1998년 김영삼 대통령이 임기 마무리 직전 김대중 당선자의 건의를 수용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사면한 선례를 차용한 셈이다. 다만 당시엔 대선이 끝난 뒤 이뤄진 결정이어서 ‘선거용’이라는 정치적 논란이 불거질 일은 없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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