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청와대에서 연 국무회의에서 부동산 적폐 청산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 투기와 관련해 처음으로 사과한 데는 ‘부동산 적폐 청산’ 의지를 다지는 것만으로는 악화된 여론을 돌파하기에 역부족이란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가 과거 정권 시절부터 있어온 구조적 폐단인 것은 맞지만, ‘적폐 청산’ 프레임만 강조할 경우 자칫 ‘책임 회피’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공개발언에서 “국민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이다. 특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들께 큰 허탈감과 실망을 드렸다”며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를 엄중히 인식하며 더욱 자세를 가다듬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큰 심려” “큰 허탈감과 실망”이란 표현에서 엿보이듯 사과의 수위가 높은 편이다. 그만큼 여론 상황이 심각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을 둘러싼 부패 구조가 과거 정권부터 이어진 ‘구조적 병폐’라는 점만 강조하지 않고, 자신의 임기 동안에도 문제점을 바로잡지 못한 점을 시인한 대목도 눈에 띈다. 다만 부패의 시정이 이뤄지지 못한 점이 ‘의지 부족’ 때문은 아니었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권력 적폐 청산을 시작으로 갑질 근절과 불공정 관행 개선, 채용 비리 등 생활 적폐를 일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며 “아직도 해결해야 할 해묵은 과제들이 많다. 특히 최근 엘에이치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으로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멀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대대적인 ‘부패 청산 드라이브’도 예고했다. 이 점은 “공직자들의 부동산 부패를 막는 데서부터 시작해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부동산 부패의 사슬을 반드시 끊어내겠다”는 대목에서 드러난다. 성난 여론은 ‘사과’로 달래고, 공세 국면으로 전환하겠다는 뜻이다. 집권 5년차 진입을 앞두고 이른바 ‘레임덕’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문 대통령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청와대는 이날 문 대통령의 국무회의 메시지에 대해 “엘에이치 투기 의혹에 공분을 느끼는 국민들의 허탈한 마음에 진정성 있게 응답한 것”이라며 “사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기대대로 문 대통령의 사과와 ‘부동산 적폐 청산’ 의지 표명이 악화하는 민심을 돌려세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야당의 요구나 국민의 3분의 2 여론에 등 떠밀리기 전에 사과하셨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꼬집으면서 “엘에이치 사태를 단순히 ‘부동산 적폐’로 치부하며 책임을 비켜 나가려는 모습은 여전히 실망스럽다”고 했다. 집권 5년차를 앞둔 문 대통령이 이제서야 부동산 부패를 “우리 사회 불공정의 가장 중요한 뿌리”라고 언급한 것도 뒤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은 “한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온갖 적폐 세력의 물적 토대가 부동산이었는데, 문 대통령의 그간 정책을 보면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남기업 소장은 부동산 보유세 강화와 고위공직자부동산백지신탁제 도입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남 소장은 “부동산 적폐 청산에 정권의 명운을 걸려면 부동산이 돈이 안되게 해야 한다. 관건은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및 차단”이라면서 “여당이 180석을 가지고 있어 기회가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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