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인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에 체류하는 사흘간의 일정 곳곳에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행사를 채워 넣었다. 출국 전엔 알리지 않았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기념관 방문도 깜짝 일정으로 추가했다. 미국이 강조해온 자유·인권 등 가치 동맹에 한국이 그동안 함께 했다는 사실을 부각하고,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에 적극 나서며 ‘제2의 루즈벨트’로 평가받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는 동시에 백악관에서 첫 대화를 부드럽게 이끌어가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의 방미 일정은 20일 오전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된 무명용사의 묘소 참배로 시작됐다. 무명용사의 묘는 제1·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 등에서 전사한 미군 무명용사들이 안치된 곳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식 뒤 버락 오바마·조지 부시·빌 클린턴 등 전직 대통령 부부와 함께 가장 먼저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무명용사의 묘에서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싸운 미군들에 대해 재차 경의를 표한다. 이렇게 피로 맺어지고 오랜 세월에 걸쳐 다져진 한미동맹을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더욱 강력하고 포괄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무명 용사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패도 기증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전 참전용사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며 ‘혈맹’을 확인하는 행사를 할 예정이다. 백악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21일 6·25전쟁과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랠프 퍼킷 주니어 퇴역 대령에게 미국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는 날, 한국전 참전용사에게 미국 최고 영예를 수여해 견고한 한미 동맹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을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현지시간) 루스벨트 대통령 기념관을 방문해 루스벨트 대통령 동상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가 현지에서 추가한 루즈벨트 기념관 행사는 바이든 대통령 ‘맞춤’ 일정이다. 미국의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20년대 세계 경제를 덮친 대공황 당시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한 실업자 구제와 노동권 존중, 사회보장제도 도입 등 뉴딜 정책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바이든 대통령도 취임 뒤 2조2500억달러 규모의 사회기반시설 투자, 교육·복지 지원 등을 담은 1조8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가족 계획’ 추진과 함께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등 제2의 뉴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면서 미국 역사상 최초로 복지 시스템과 기준을 도입하고 통합적 리더십으로 국내 경제 회복을 성공적으로 이끈 루스벨트 대통령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또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부흥의 시기로 이끌었다”며 “코로나19로 당시와 유사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당시 진행했던 정책들을 본받아 한국판 뉴딜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21일 한미정상회담 이후 문 대통령이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공원에 건립되는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벽’ 착공식에 참석하는 것도 ‘혈맹 행사’의 일환이다.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벽에는 한국전에서 희생된 3만6574명의 미군과 미군에 배속된 한국군 카투사 전사자 7000여명의 이름이 새겨진다. 미국 의회는 2016년 10월 추모의 벽 건립 관련법을 통과시켰고, 한국 국회도 같은해 11월 건립 지원 촉구 결의안을 내는 등 한미동맹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한미정상회담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인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모의 벽’은 미국과의 관계뿐 아니라 전쟁 억지의 의지를 다지기에도 의미 있는 장소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내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2017년 당시 우리는 한반도에 다시 한번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정말로 우려했다”면서 “하노이회담에서 북미 양국이 실패를 경험한 바 있기 때문에 실패 토대 뒤에서 서로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머리를 맞대고 찾아나간다면 나는 양측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전쟁을 피하고 머리를 맞대는 것을 강조한’ 문 대통령이 이곳을 찾기에 앞서,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북핵 해법을 도출해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문 대통령은 다음날인 22일 오전 워싱턴에서 월튼 그레고리 추기경을 만나 ‘한반도 평화’에 대한 노력을 이어갈 예정이다. 방미 일정 가운데 미국 천주교의 고위 인사인 추기경을 만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경색된 북-미 관계를 풀기 위해 가톨릭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한반도 평화 문제에 관심이 많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노력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했을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전달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는 갈 수 있다”고 적극 호응한 바 있다.
이완 기자, 워싱턴/공동취재단
w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