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영국 콘월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확대회의 3세션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마무리된 13일, 문재인 대통령을 영국을 떠나 다음 순방지인 오스트리아로 향하면서 에스엔에스(SNS)에 글을 올려 ‘소회’를 적었다. 이 글에서 문 대통령은 20세기의 역사적 사건 2가지를 떠올렸다고 썼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와 1945년 독일의 포츠담회의였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외교 침탈을 알리기 위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헤이그에 도착한 이준 열사는, 그러나 회의장에도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고 “한반도 분단이 결정된 포츠담회의에서는 우리는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강대국들 간의 결정으로 우리 운명이 좌우되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이처럼 과거 우리나라가 겪은 수모와 고난의 역사를 떠올린 것은 이번 G7 정상회의에 한국이 인도·오스트레일리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함께 초청된 데 대한 감회가 깊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엔 영국·프랑스 정상들과 양자 회담을 갖고 코로나19 백신과 첨단기술 공급망 등 국제적인 현안을 논의했고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대한 국제적 협력을 요청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는 신형 백신 개발 협력에 대한 의견을 나눴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선 반도체·전기차 등 첨단 핵심기술 분야 협력을 요청받았다. 확대회의장에선 의장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의 오른편에 앉아 논의하는 장면이 보도되며 우리나라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문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면서 “오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성숙한 국민들이 민주주의와 방역, 탄소 중립을 위해 함께 행동하는 나라가 되었다”면서 “이제 우리는 우리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다른 나라와 지지와 협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이처럼 높아진 ‘국격’만큼 국제사회에서 책임도 커졌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개발도상국을 위한 코로나19 백신 지원에 올해 1억 달러, 내년 1억 달러 등 총 2억 달러를 쓰겠다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외교 전문가는 “국제사회가 한국에 요구하는 역할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면서 “2억 달러도 우리 경제력에 비춰 많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앞으로 국제적 공공재에 대한 분담 요구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코로나 19 백신 공동 구매·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에 미국은 25억 달러, 일본은 1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상향되면서, 한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탄소 중립 정책에 참여해야 한다는 압박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을 올해 안에 마련하고,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인 ‘국가결정기여(NDC)’를 절대량 목표 방식으로 전환하여 유엔에 제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좀 더 이른 시일 안에 구체적인 목표 수치를 제시하고 탄소 중립 정책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중국에 대한 비판 강도가 강해진 것도 한국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참관국으로 참석한 한국은 이 공동성명엔 서명하지 않았지만 정상회의의 주요 프로그램인 ‘열린 사회와 경제’ 성명에 이름을 올리며 ‘권위주의 발호’ ‘정치적 의도로 자행되는 인터넷 차단’ 등에 서방 선진국들과 공동대응할 뜻을 밝혔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번 정상회의에는 초청국으로 참여하면서 결과에는 책임질 필요는 없으면서 외교적으로 얻은 것은 많았다”고 평가한 뒤 “앞으로 중국을 향한 역할을 많이 요구받고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G7 내 다른 국가와 연대를 통해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과 교역이 많은 프랑스와 독일 등 미국과 다른 셈법을 가진 나라들과 함께 미-중간 냉전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