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다시 시작하는 남북합의 이행' 주제의 전국 남북교류협력 지방정부협의회·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통일부와 미 국무부 사이에 대북정책 조율을 목적으로 한 고위급 양자 협의가 이뤄진다.
대북 정책 관련 한-미 주무부처의 양자 협의인 셈인데, 미 국무부가 한국 외교부가 아닌 통일부와 각급 양자 협의를 하는 건 전례를 찾기 어려운 새로운 현상이다. 큰 틀에선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정상회담에서 “대북 접근법이 완전히 일치되도록 조율”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한-미 간 다차원 후속 협의의 일환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때 스티브 비건 대북특별대표는 방한 때 통일부 장관을 예방했으나, 국무부가 통일부 차관·국장급 등과 별도 양자 협의는 하지 않았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21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2일 오전 8시 (정부서울청사) 장관실에서 성김 미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접견한다”고 밝혔다. 이종주 대변인은 “통일부는 이번 예방을 통해 정부의 남북관계 발전 구상에 대한 미국 쪽의 이해를 넓히고 앞으로 한미 협력 의지를 다져나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종주 대변인은 이어 “장관 접견 뒤 22일 오전 8시30분부터 최영준 통일부 차관과 성김 대표가 통일부와 미 국무부 간 대북정책 고위급 양자 협의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어 “고위급협의에서는 양쪽이 최근 북한 정세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이산가족 상봉, 인도주의 협력 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 방안을 폭넓게 논의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변인은 “23일 오전 11시30분부터 통일부 김진표 정책협력관과 정박 미 대북정책특별부대표의 국장급 협의가 이뤄진다”고 밝혔다.
통일부와 국무부의 각급 양자 협의는 트럼프 행정부 때와 확연히 달라진 소통 방식이다. 한-미는 세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직후인 2018년 11월 한국 외교부와 국무부를 주된 창구로 한 ‘한·미 워킹그룹’을 출범시켜 이를 통해 대북정책을 조율해왔다. 단순화하자면,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주무부서인 통일부는 외교부를 통해 미국 쪽에 의견을 밝히는 방식이었다. 이에 비춰 이번 통일부-국무부 양자 협의는 통일부의 견해를 국무부에 직접 설명·설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방식이다. 전례 없는 통일부-국무부 양자 협의 성사엔 이인영 장관의 강한 의지가 작용했다고 전해진다.
한-미 워킹그룹은 양국 정부의 긴밀한 대북정책 조율의 틀로 기능해왔다는 평가와 함께, 미국이 한국의 대북 접근을 통제·제어하는 수단으로 악용돼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성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왼쪽부터)와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통일부-국무부 양자 협의가 현재 한-미 사이에 기능과 성격 조정 협의가 이뤄지고 있는 ‘한미 워킹그룹’을 대체하는 건 아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존의 한미 워킹그룹과는 별개의 협의”라고 선을 그었다.
이종주 대변인은 “통일부는 앞으로 각급별 한미 협의를 통해 한미 간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켜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통일부-국무부 양자 협의를 일회성이 아닌 정례 협의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의지가 실린 발언으로 읽힌다.
이인영 장관은 평소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진전엔 남북관계의 선도적 구실이 필요하며, 그러자면 “제재의 유연한 적용”이 절실하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이에 비춰 이 장관을 포함한 통일부 쪽은 장기 중단 상태인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 재개의 밑돌을 놓을 초보적 조처의 필요성을 국무부를 상대로 타진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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