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7함대 소속 알리버크급 구축함 존 매케인호가 2021년 2월4일 대만해협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
우리가 또다시 전쟁을 겪게 된다면, 어떤 상황에서 유래하게 될까? 우리가 오랫동안 걱정해왔던 시나리오는 남북 간에 무력충돌이 발생해 확전되는 상황이나 북-미 간의 무력충돌이었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지만, 그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한반도 평화가 정착된 것은 아니지만, 상호간에 전쟁 억제가 작동하고 있고 어느 누구도 전쟁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적어도 전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아니다.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해 한국이 여기에 휘말리는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대만해협이 ‘동아시아의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두고 미국외교협회는 올해 2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대만은 미국과 중국, 그리고 여러 주요국이 관여하는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 필립 데이비드슨 사령관도 3월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아마 중국이 6년 이내에 대만에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런데 대만해협에서 전쟁이나 이에 준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에게도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닌 상황이 다가올 수 있다.
이러한 진단이 결코 기우만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 장면이 있었다. 5월18일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열린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의 인준 청문회가 바로 그것이다. 러캐머라는 청문회 서면답변에서 “주한미군은 인도태평양사령관에게 역외(한반도 밖) 우발 사태나 지역적 위협에 대응하는 데 여러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며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우발 계획과 작전 계획에 주한미군의 능력을 포함시키는 것을 옹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5월18일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열린 인준 청문회에서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가 상원의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그리고 약 2시간 진행된 청문회에선 중국이 37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인도태평양사령관도 아니고 주한미군사령관을 대상으로 한 청문회에서 중국이 이렇게 많이 언급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중국이 자주 언급된 맥락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한반도 비핵화를 비롯한 대북정책의 맥락에서 중국의 역할이 주로 언급되었다면, 이번에는 달랐다. 대만이 12번 언급되었을 정도로 양안 관계가 주된 논점이었다.
조시 홀리 상원의원은 만약 중국이 대만 침략을 시도한다면 북한에 “기회의 창”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즉 북한의 남한 공격을 의미한 것이다. 이러한 발언과 최근 일련의 흐름을 종합해보면 몇가지 주목해야 할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적어도 미국에선 대만해협 사태 발생 시 주한미군 투입 옵션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렇게 될 경우 주한미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유엔사 강화를 추진해왔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는 점이다. 셋째는 미국은 전시작전권 이양 이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더욱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홀리는 “작전권 조정은 주한미군의 임무 및 배치 재조정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유연성을 제공해주느냐”고 물었고 러캐머라는 “그렇다”고 답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 등장 이후 주요 정상회담에서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바로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이다. 이 표현은 4월 미-일 정상회담, 5월 한-미 정상회담,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모두 담겼다. 미-일 정상회담에선 52년 만에, 한-미 정상회담과 G7 정상회담 성명에선 처음이었다. 그만큼 미국이 대만의 미래를 중국과의 전략 경쟁의 ‘핫스팟’으로 여기면서 동맹국들의 힘을 결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는 중국 정부도 강조해온 바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 점을 강조해왔다. 중국도 쓰고 있는 표현이니 한-미 공동성명에 포함되었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이 표현을 둘러싼 미-중 간의 동상이몽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의 입장은 대만해협의 ‘현상 유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상을 흔드는 중국의 언행을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를 해치는 것으로 본다. 특히 중국이 무력 사용이나 사용 위협을 통해 대만 통일을 시도하는 것을 ‘금지선’(red line)으로 설정하고 있다. 미국은 “대만이 중국에 맞서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돕겠다”며 1979년 ‘대만관계법’에 따라 대만 방어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양안 관계의 ‘현상 변경’을 원하고 있다. “대만해협의 통일이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최선의 해답”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저해하거나 부정하려는 언행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어떤 나라도 대만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금지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원칙을 분명히 해둔 것이 2005년에 제정한 ‘반국가분열법’이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분열세력이 어떠한 방식으로 대만을 중국과 분열시키거나,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분열되는 중대한 사변이 발생하거나, 혹은 평화통일의 가능성을 완전히 상실할 경우, 중국은 비평화적 방식과 다른 필요한 조처를 통해 국가주권과 영토완정을 지킬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처럼 대만해협을 둘러싼 위기의 저변에는 양립하기 어려운 불안한 균형이 깔려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주요 행위자들이 ‘억제’에 방점을 찍어왔다. 미국은 중국의 무력통일 시도를 억제하는 데에, 중국은 대만의 독립 시도나 미국의 방조를 억제하는 데에 주안점을 둬온 것이다. 대만도 공식적인 독립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선택인지를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아슬아슬한 균형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느냐에 있다.
당장은 가능성이 낮지만, 양안 관계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이 위축되고 대만 문제가 미-중 전략 경쟁의 핵심 무대가 될수록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가 깨질 가능성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예방하는 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제한적인 반면에, 상황 발생 시 우리의 운명이 급격히 타자화될 공산이 크다는 데 있다.
예고편은 이미 나오고 있다. 우선 지난해부터 오산 공군기지에 있는 미군의 고공정찰기인 U-2S가 황해, 대만해협, 남중국해 등으로 날아가 중국을 감시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또 6월 초에는 미군의 초대형 군수송기인 ‘글로브마스터’(C-17)가 오산 기지에서 미국 상원의원 3명과 백신을 싣고 대만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이 필요에 따라 주한미군 전력을 한반도 역외로 전개하는 것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라고 부른다. 기실 이 문제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에 한-미 간에, 또 국내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었었다.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했었다. 미국이 벌인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 등 당장의 필요뿐만 아니라 동북아 분쟁, 즉 중국과의 무력충돌 발생 시에도 주한미군을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한다”면서도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양측의 해석 차이로 이어졌다. ‘주한미군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문제가 부상한 것이다.
주한미군은 미국 군사력의 일부인 동시에 한국의 영토에 주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이 미-중 군사충돌 시 개입하게 되면 한국도 원하지 않는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매우 커지게 된다. 이를 우려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실질적 합의는 한국 정부가 동의하지 않는 한 (주한미군도) 움직이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주한미군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미국의 주권 사항”이라며 대만해협에도 투입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 이후 이 논란은 깔끔히 해결되지 못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표현도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러나 그 이후 미국은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꾸준히 추구해왔다. 급기야 올해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처음으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성과(?)도 거뒀다.
5월2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15년 전과 오늘날의 상황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은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일에 대비해 주한미군을 한반도 ‘역외’ 분쟁에 투입할 선택지를 강구해왔다. 그런데 정작 한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둔감해지고 있다. 많은 이들은 한-미 동맹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겨냥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하는데, 정부는 특정 국가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고 항변한다.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이제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되었다. 대만해협에서 미-중 간에 군사 위기가 고조되거나 실제 충돌이 발생해 주한미군이 출동하면 어떻게 될까? 유사시 경북 성주에 있는 사드 레이더가 중국의 탄도미사일을 탐지·추적해 다른 미사일방어(MD)체제에 그 정보를 전송한다면? 미 해군이 제주해군기지를 기항지로 사용하려고 한다면? 만약 중국이 이에 대응해 무력 보복을 가해 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중 충돌이 중-일, 더 나아가 한-중 충돌로 번지면 중국과 ‘혈맹’이라는 북한은 어떻게 나올까? 모두 가정형 질문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다. 이러한 안보제일주의가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인권과 자원의 합리적 배분과 같은 다른 가치를 압도하는 경우도 종종 봐왔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둔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행운을 빕니다.” 5월 한-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만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자 조 바이든 대통령이 농담처럼 던진 말이다. 그러나 농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엄중하다. 미-중 유사시 한국이 연루될 수도 있는 문제를 운에 맡겨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여 우리 영토를 이용하는 미국 군사력에 대한 주권적 통제부터 미-중 충돌 시 중립을 지키는 방안에 이르기까지 연루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또 대만해협의 평화를 위한 우리의 역할도 찾아야 한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겸 평화네트워크 대표
wooksi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