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조선노동당 8차 대회 당시 주석단의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김여정 당중앙위 부부장의 모습. <조선중앙텔레비전> 화면 갈무리, 연합뉴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한국·미국 양국 군이 10일부터 사실상 여름철 연합군사연습에 돌입하자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10일 오전 8시 <조선중앙통신>으로 발표한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 부부장 담화”에서 “거듭되는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강행하는 미국과 남조선 측의 위험한 전쟁 연습은 반드시 스스로를 더욱 엄중한 안보 위협에 직면하게 만들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김 부부장은 “나는 위임에 따라 이 글을 발표한다”고 밝혀, 이 담화가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의중을 대신 전하는 것임을 내비쳤다.
이번 담화는 대외용 매체인 <중통>으로 발표됐고, 일반 인민들도 접할 수 있는 이날치 <노동신문>(노동당 중앙위 기관지)에는 실리지 않았다. 지난 1일 <중통>으로만 발표한 한·미 연합군사연습 ‘취소’ 촉구 담화와 마찬가지로,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둘러싼 한·미와 갈등을 내부에는 알리지 않고 있는 셈이다. 주목할 대목이다.
김 부부장은 이 담화에서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가장 집중적인 표현”이자 “우리 인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정세를 위태롭게 만드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자멸적 행동”이라 규정했다. 이어, “침략전쟁연습을 강행한 미국이야말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장본인”이라며 “현 미 행정부가 떠들어대는 ‘외교적 관여’와 ‘전제조건 없는 대화’란 저들의 침략적 본심을 가리우기 위한 위선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김 부부장은 또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절대적인 억제력, 우리를 반대하는 어떤 군사적 행동에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국가방위력과 강력한 선제타격 능력을 강화해나가는 데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며 ”조선반도에 평화가 깃들자면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무력과 전쟁장비들부터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김 부부장은 “우리는 이미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혔다”며, 김정은 총비서가 지난 1월 노동당 8차 대회에서 밝힌 대미 노선(강대강, 선대선)을 재확인했다. 미국 태도에 따라 북한의 대응도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한·미 양국을 모두 겨냥하고 있지만, 비판의 분량과 초점은 압도적으로 미국 쪽에 맞춰져 있다. 아울러 “배신적인 처사”의 주체를 “남조선 당국자들”이라고 밝혀,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친서 소통’을 통해 남북 직통연락선 복원에 합의한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비판하는 형식은 피했다. 이는 김 부부장이 지난 3월30일 담화에서 문 대통령을 “미국산 앵무새”에 비유하며 “후안무치” “철면피” “뻔뻔스러움” 따위 감정 섞인 표현을 다수 동원한 선례와 비교된다. 북쪽의 앞으로 대남 태도와 관련해 주목할 대목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