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뒷줄 오른쪽 둘째)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뒷줄 왼쪽 둘째)이 지난 3월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가서명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미국이 2019년 3월 한국의 은행에 예치돼 있던 방위비 분담금 미집행 현금 2800여억원을 전액 달러로 환전한 뒤 미 재무부 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2014년 제9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당시 ‘이면 합의’에 따른 것인데, 한국 국방부는 7개월이 지나서야 최종 송금을 확인했다. 국방부는 또 미국의 송금 방침을 통보받고도 국회에는 전혀 알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한국 은행에 남아 있는 미집행 현금을 미 재무부 계좌로 송금하겠다고 공식 서한을 보낸 것은 2019년 2월로, 미국은 그 다음달 전액을 달러로 바꿔 미 재무부 계좌로 보냈다. 미국은 당시 서한에서 2800억원 송금 목적으로 ‘한국항공우주작전본부(KAOC)와 정보운영실(BLACK HAT) 노후건물 신축사업’이라고 알렸다. 경기도 오산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작전본부는 한-미 연합 공군 작전 지휘부로, 2016년부터 재설계 등 최신화 작업에 들어갔다. 국방부 관계자는 “최근 미국에서 자신들의 재무부 계좌에 돈이 있지 않으면 자금 운용을 할 수 없도록 절차가 바뀌어서 넘겨달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방위비분담금 미집행 현금을 미 재무부 계좌로 넘겨달라는 것은 미국의 오랜 주장이었다. 애초 미국은 현금 지급을 선호했지만, 미국이 미집행 예산으로 연간 300억원 이상의 이자 수익을 벌어들인다는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지급 방식을 바꾸도록 했다. 2009년 제8차 방위비분담협정 때부터 기존 100% 현금 지원에서 설계·감리비용(12%)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현물 지급하도록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현금으로 달라’는 미국 요구는 계속 이어졌고,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제9차 방위비분담 협상에서 ‘예외’ 사유가 있으면 현금 지원을 늘려주겠다는 ‘이면 합의’를 했다.
국방부는 이번에 미 재무부로 넘어간 돈은 “제8차 방위비분담협정 전에 이미 미국에 지급한 돈”이기 때문에 협정 위반 소지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돈이 ‘주한미군’을 위해 쓰인다는 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국방부는 미국으로부터 미 재무부로 송금하겠다는 연락을 받고도 국회 보고 등의 조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2019년 4월 국회를 통과한 제10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 국회 비준안의 ‘부대 의견’엔 “정부는 2884억원 상당인 미집행현금이 조속히 소진될 수 있도록 하고 그 집행 현황을 파악해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했지만, 국방부는 이를 모른 체한 셈이다. 현재 미 계좌에 넘어간 돈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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