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군산복합체는 기후변화를 사업 확장 기회로 보고 있다. 사진은 기후변화에 따른 극심한 피해 지역의 하나로 꼽히는 아프리카에서 미국 아프리카사령부(AFRICOM·아프리콤)가 공중통합훈련을 하는 모습. 아프리콤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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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선 글에서 군사 활동이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데도 기후위기 대처에 ‘거대한 예외지대’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가 열렸다. 지구온난화 규제 및 방지를 위한 협약 체결이 목표였다. 이에 앞서 딕 체니를 비롯한 전직 미국 국방장관들과 여러 정치인들이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교토 의정서가 전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미국의 군사 작전을 방해할 것”이라며, 미국이 이 의정서 가입을 거부하거나 군사 분야는 예외로 두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클린턴에게 서한을 보낸 사람들의 상당수가 군수산업체나 석유회사의 임원이었다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도 이러한 입장에 동조했다. 펜타곤은 교토 회의에 앞서 이 협약이 군사 훈련, 작전, 연료 사용 등에 차질을 빚어 ‘군사 준비태세’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도 펜타곤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동맹국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대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교토 회의 대표단의 일부는 미국이 군사 예외주의를 고집할 경우 협약 체결이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이들은 소수파였다. 결국 미국의 협상팀은 협상 막바지에 군사 분야를 제외할 것을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다.
이를 두고 미국의 환경단체들은 미국 정부가 기후위기 대처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고 비판했다. 반면 클린턴 행정부는 “중대한 승리”라고 자평했고, 존 케리 당시 상원의원은 미국 협상팀이 “엄청난 일”을 해냈다고 격찬했다. 참고로 그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기후변화특사를 맡고 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61년 퇴임사에서 경고한 “군산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이 기후변화 협상장에도 깊숙이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21세기 들어 지구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더욱 강력하고 실효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특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기후위기 대처에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면서 탄력을 받는 듯했다. 오바마는 기후변화가 난민, 자연재해, 부족해지는 식량과 물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기후위기를 “심각한 국가안보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교토 의정서에서 ‘국가안보 예외’를 관철시켰다면, 오바마는 기후변화 자체를 국가안보의 위기로 봤던 것이다.
하지만 군산복합체는 기후위기를 ‘기회’로 간주했다. 펜타곤은 기후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분쟁이 늘어나고 있던 아프리카에 대한 “미군의 개입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아프리카사령부(United States Africa Command, AFRICOM)를 창설했다. 미국의 주요 군수산업체인 레이시온은 기후변화로 인해 “사업 기회가 확장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기후변화가 야기하는 “폭풍, 가뭄, 홍수”가 “안보 우려”를 자극할 것이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분쟁이 또 다른 이윤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대다수에게는 ‘위기’로 다가왔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로 간주되었다. 이 양면성은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협상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환경과 평화 단체들을 중심으로 기후위기 대처에 군사 분야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파리 회의에서도 군사 분야 문제가 다뤄졌지만, 의무 사항이 아니라 “자발적인 보고” 수준에서 절충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협약 당사국들은 또다시 군사 분야의 탄소 배출 보고 의무를 지니지 않게 된 것이다.
자발적 보고를 하더라도 누락되거나 불분명·불완전한 경우도 다반사이다. 미국의 예만 놓고 보더라도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미국은 해외에 750개의 군사시설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시설에서 내뿜는 탄소량은 보고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미 해군이 국제 수역에서 벌이는 작전에서 배출하는 탄소량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무기와 장비를 만드는 미국의 방위산업체 및 이와 연관된 공급망에서 배출하는 탄소량도 예외지대로 남아 있다. 이와 관련해 브라운대학의 네타 크로퍼드 교수는 주요 군수산업체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미군이 배출하는 양과 비슷하다고 분석한다.
기후변화 대처를 핵심적인 국정목표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는 어떨까?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12월 초에 대통령 행정명령을 내렸다. 모든 정부 기관들이 2030년까지 100% 클린 전기 사용을, 2050년까지는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예외를 뒀다. 바로 군사 작전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군사 작전을 예외로 두면서 비판을 받았지만, 바이든 행정부도 이 문제를 시정하지 않은 것이다.
최근 들어 펜타곤은 2008년 대비 탄소 배출량을 23% 줄이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08년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롯해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이 정점에 달했을 때였다. 미국이 이들 전쟁을 종결하면서 탄소 배출량이 줄어든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뜻이다. 또 이 수치에는 함정, 군용기, 전투 차량 등 주요 탄소 배출원이 포함되지 않았고 군수산업체 및 이와 연관된 공급망에서 배출하는 탄소량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처럼 기후위기 대처에서 군사 활동이라는 빈 구멍이 커지자 지난해 11월 초에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 회의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한 세션에선 미국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국제사회가 더더욱 힘을 모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자 한 기자가 펜타곤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탄소 배출 기관인데, 미국 의회가 국방비 증액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펠로시는 미국의 국방비는 적정 규모로 책정되어 있다고 반박했다.
기후변화 회의를 마치고 귀국한 미국 의회 대표단은 바이든 행정부가 제출한 2022회계연도 국방예산안 심의에 들어갔다. 그리고 행정부가 제출한 7430억달러(884조8천억원) 규모의 국방예산안이 적다며 250억달러를 증액했다. 군수산업체-펜타곤-의회로 연결된 군산정복합체의 탐욕에 기후위기 대처의 구멍은 나날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를 전공했다. 조지워싱턴대 방문학자로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를 연구했다.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핵과 인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등 다수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