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사일 발사 자료 사진.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통령 선거로 국내외 정세가 극도로 민감한 가운데 북한이 약 한달 만에 탄도미사일 발사를 재개했다. 이번 미사일 발사는 올들어 8번째 북한의 무력시위로, 북한은 지난달 7차례 탄도·순항 미사일을 연이어 쏜 뒤 베이징겨울올림픽(2월4~20일) 기간은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불안정한 국내외 정세에 북한 변수가 다시 추가된 상황이라, 한반도 평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한국의 부담과 고민이 커졌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27일 “이날 오전 7시52분께 북한 평양시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 이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약 300㎞, 고도는 620㎞로 탐지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북한이 미사일 등의 발사 시점을 정할 때는 무기 개발 과정의 시험뿐만 아니라 대미·대남 관계도 계산해왔다. 지난 20일 베이징겨울올림픽이 끝났고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쏠리자 북한문제에도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미사일을 다시 발사하면, 미국은 러시아와 북한에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고, 북한은 대미 협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 미사일에 대해 차분하게 대응했다. 한반도를 작전구역으로 둔 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낸 성명에서 “미국은 이번 발사를 규탄하며, 북한에 대해 추가적 불안 조성 행위를 삼갈 것을 요구한다”며 “우리는 이번 사안이 미국인들이나 그 영토, 우리 동맹들에 즉각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고 평가하지만 상황을 계속 지켜볼 것이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쏜 미사일이 미국 안보에 직접 위협이 되는 중장거리 미사일이 아닐 때 통상 미국 당국자가 보여왔던 공식 반응이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긴급회의를 개최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가 진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세계와 지역과 한반도평화 안정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깊은 우려와 엄중한 유감”을 표했다.
청와대는 지난달 단거리미사일 발사 때는 ‘유감’이나 ‘우려’를 표했고 지난달 30일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규탄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날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가 표한 입장의 강도는 지난달 북한 단거리미사일 발사 때보다는 높고, 중거리미사일 발사 때보다는 낮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참석자들은 또한 “중요한 정치 일정에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우리 안보를 수호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열흘 앞둔 대선에 북한 변수가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북한이 대규모 열병식, 미사일 발사 등 군사행동을 계속한다면 한반도 긴장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한국의 전략적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한미 공조가 강조될수록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한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지난 26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통화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계획적이고 정당화할 수 없는 공격에 대응한다는 공동의 약속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독자제재는 하지 않겠지만 국제사회의 제재에는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공식 입장과 달리 한국과 미국은 내부적으로 대러제재에 대해 판단에서 차이가 있다. 국내외 일부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신냉전이 본격화되고 미국·유럽과 러시아가 정면 대결하면 세계 각국이 어느 한쪽을 양자택일해야 하는 진영주의가 득세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같은 신냉전 진영주의의 고착화는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게 한국 정부의 판단이다. 한국은 미국·유럽과 달리 한반도평화를 위해 러시아와 긴밀히 협력해야 하기 때문에 대러제재를 두고 한-미 간 미묘한 온도 차이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각) 공개된 한 유튜버와의 인터뷰에서 대러 제재와 관련해 “유럽뿐 아니라 태평양의 일본과 한국, 오스트레일리아도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이 좀더 적극적으로 대러 제재에 나서야 한다는 속내를 에둘러 드러냈다는 해석도 나온다.
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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