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8~10일 평양 노동당 중앙위 본부회의실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 8기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자위권은 곧 국권 수호 문제”라며 “강 대 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을 재천명하셨다”고 <노동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지난 8~10일 평양 노동당 중앙위 본부회의실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 8기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자위권은 곧 국권 수호 문제”라며 “강 대 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을 재천명하셨다”고 <노동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지난해 1월 노동당 8차 대회에서 밝힌 “강 대 강, 선 대 선 원칙”에서 “선 대 선”이 사라지고 “정면승부”가 새로 추가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을 계기로 빠르게 악화하는 ‘한·미 대 북’의 대치 구도와 관련해 대화·협상 국면으로 전환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간접화법이다. 다만 김 총비서가 회의에서 대남·대미 정책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언급을 했는지 <노동신문>은 전하지 않았다.
김 총비서는 “국가의 안전환경은 매우 심각하며 주변정세는 더욱 극단하게 격화될 수 있는 위험성을 띠고 있다”며 “국가방위력 강화에 계속 큰 힘을 넣을 데 대해 강조”하고 “공화국 무력과 국방연구 부문이 강행추진해야 할 전투적 과업들을 제시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초미의 관심사인 7차 핵실험 최종 결정 여부와 관련해 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신문은 전하지 않았다. 8124자에 이르는 <노동신문>의 회의 결과 보도문에 ‘핵’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복수의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12일 “7차 핵실험은 김정은이 언제든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할 것”이라고 짚었다. 7차 핵실험 가능성이 사라진 건 전혀 아니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남쪽을 사실상 겨냥한 “대적 투쟁”이라는 표현이 등장해, 북을 ‘우리의 적’이라 규정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정책 기조가 매우 강경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김 총비서가 “대적 투쟁과 대외 사업 부문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들과 전략전술적 방향들을 천명”했다고 신문은 전했는데, 이는 직전 노동당 전원회의(8기4차, 2021년 12월27~31일) 때의 “북남관계와 대외 사업 부문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 문제들과 일련의 전술적 방향들”이라는 표현에서 ‘북남관계’를 ‘대적 투쟁’이라는 문구로 바꾼 것이다. 북한을 상대한 경험이 풍부한 원로 인사들은 “앞으로 남북관계가 걱정”이라며 “남북 사이 군사적 충돌을 막아준 제도적 장치인 ‘9·19 군사분야 합의’가 파기되는 상황은 어떤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총비서는 북한이 처한 상황을 “유례 없는 국난” “미증유의 엄혹한 시련”이라 비유했다. 이어 “전반적 경제의 상승 추이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는데, 평소 어법에 비춰 상반기 경제계획 성과가 부진하다는 자기 평가에 가깝다. 그러고는 “농사와 소비품 생산”을 “올해 경제과업들 중 급선무”로 꼽았다. 아울러 “인민경제 수행”이 “당과 인민에 대한 충실성이고 헌신적 복무”라며 “모든 것을 총집중”하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확산과 2년5개월째에 접어든 장기 국경 폐쇄의 고통으로 흔들리는 민심을 다잡는 데 당과 정부의 행정력을 쏟아부으라는 지침이다. 김 총비서는 이 와중에도 “올해 계획된 중요 대상 건설 과제(대형 건설 계획)들을 무조건 다연발적으로 완수”하라고 다그쳤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을 공식 확인(5월12일)한 지 한달째에 접어든 ‘국가비상방역’과 관련해 김 총비서는 “돌발적인 중대고비를 넘겨 봉쇄 위주의 방역으로부터 봉쇄와 박멸 투쟁을 병행하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고 밝혔다. 12일 <노동신문> 보도를 보면, 코로나19 신규 유열자(발열 증상자)는 4만60여명으로 열하루째 감소세를 이어가, 누적 유열자가 443만2900여명으로 전체 인구(2537만명)의 17.5%에 이른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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