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실 주최로 열린 북한인권실태 사진전. 연합뉴스
통일부가 31일 정부 차원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개 발간한 <북한인권보고서>(450쪽)는 법적으론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정치적으론 “북한 주민의 처참한 인권 실상이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에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해온 윤석열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북한인권법은 제15조에서 통일부 장관이 “북한주민 인권 실태”를 포함한 “북한인권증진계획”을 해마다 정기국회 전에 국회에 보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통일부는 지금껏 해마다 8월께 국회에 “북한주민 인권 실태”를 보고해왔다. 이 보고는 통일부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 입소한 탈북민을 상대로 조사해 정리한 북한인권 실태 관련 비공개보고서를 토대로 한 것이다. 요컨대 2016년 북한인권법 제정 이후 통일부는 연례적으로 북한인권보고서를 비공개로 작성해왔고, 이를 국회에 보고해왔다.
통일부가 이번에 내놓은 <북한인권보고서>는 지금껏 ‘비공개+국회 보고’로 한정되던 기존의 정부 차원 ‘북한인권보고서’와 비교해, ‘무제한 공개’를 목적으로 처음으로 작성·공개됐다는 점이 다르다. 아울러 통일연구원이나 민간단체에서 제한된 사례 조사를 토대로 지금껏 펴낸 북한인권백서 등과 달리, 탈북민 전수 조사의 결과이자 정부가 발간 주체라는 차별성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부터 “북한주민 인권 개선”을 거듭 강조해왔고, 이에 따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8월 북한인권 실태를 백서 형식으로 작성해 일반 국민한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보고서 작성의 실무 주체는 북한인권법 13조에 따라 2016년 9월28일 통일부 안에 만들어진 ‘북한인권기록센터’가 맡았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 초까지 보고서 초안이 작성됐다. 이후 △북한인권 전문가 △탈북민 △법률 전문가 등의 감수·자문을 거쳤다. 아울러 국가정보원 등 유관기관과 협의도 거쳐 31일 발간에 이르렀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는 2017년 1월부터 하나원에 입소한 탈북민을 대상으로 4주 단위로 북한인권 실태 조사를 벌여왔다. 그렇게 2022년 말까지 하나원을 거쳐간 탈북민 3412명을 조사해 ‘북한인권 실태’를 증언한 2075명의 문답서를 확보했다.
이번 <북한인권보고서>에 실린 ‘북한인권 실태’는, 2017~2022년 북한에서 벌어진 1600여건의 인권 침해 사례를 전한 508명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다. 보고서에 실린 북한인권 실태의 시작점이 2017년인 까닭은, 북한인권기록센터가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 모두를 대상으로 체계적인 ‘북한주민 인권실태’ 조사를 시작한 때가 2017년부터이고, “최근 실태”를 가감없이 보고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다만 보고서에 실린 “1600여건의 인권 침해 사례”는 대부분 2017~2019년 3년간에 집중돼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북한 당국이 2020년 1월말부터 국경을 폐쇄한 탓에 이후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이 크게 줄어, 2020~2022년 기간의 북한 인권 실태를 증언한 탈북민이 40명에 미치지 못한 사정이 작용했다. 공식적으론 2017~2022년 6년간의 실태를 담고 있다고 하지만, 그 92% 남짓은 2017~2019년에 집중돼 있다.
증언자 508명은 성별로는 여성 53%, 남성 47%로 대충 균형이 맞다. 지역적으로는 탈북 전 거주지가 양강도·함경북도 등 접경지역이 76%에 이를 정도로 한쪽으로 쏠려 있다.
보고서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생명권 등 13개 항목)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식량권 등 5개 항목) △취약계층(여성·아동·장애인 3개 항목) △특별사안(정치범수용소/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2개 항목) 등 모두 4개 범주 23개 항목으로 나눠 “최근 북한 인권 실태”를 정리했다.
다만 증언의 신빙성과 관련해, ‘검증된 정확한 사실이다’라고 확언하기엔 아직 부족함이 있다. 이번 보고서에 실린 증언엔 △증언자가 직접 겪은 일 △증언자가 눈으로 본 일 △증언자가 직접 겪거나 보지는 못했으나 ‘전해 들은 일’이 섞여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한 서로 다른 증언도 적지 않다. 이 경우 통일부는 “상반된 증언을 모두 싣는다”는 편집 방침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북한 인권 상황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대표적 비판 대상인 ‘정치범수용소’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보고서에서 밝혔다. 통일부는 “파악된 정치범수용소는 11곳이며, 현재까지 운영되는 시설은 5곳”이라며 “다만 최근에 정치범수용소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거나 직접 목격한 사례가 드물어 수용소의 현황·처우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적었다. 이런 사정 탓에 “정치범수용소나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등 사안의 특성상 사례가 매우 적을 경우 2010년 이전 사례라도 유의미하다고 판단될 경우 보고서에 포함시켰다”고 통일부는 밝혔다.
통일부는 <북한인권보고서>를 2500부 인쇄해 정부기관·도서관·연구소 등에 보내고 영문판도 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고서 전문은 통일부 누리집에서 31일부터 내려받을 수 있다.
통일부는 <북한인권보고서>를 앞으로 해마다 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1월27일 대통령 업무보고 때 “북한 인권 현황 보고서”(국문·영문)를 해마다 발간해 “북한인권 실상을 국내외에 적극적으로 알리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당국자는 “기본적으로는 내년에도 발간할 계획”이라면서도 “올해 국내에 탈북민이 얼마나 들어올지, 그분들한테서 올해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얼마나 증언을 들을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새로운 증언이 극소수에 그치면 내년에 새 보고서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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