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당시 고 김현택 일병 유해(하얀 원 내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한국전쟁 전사자 고 김현택 일병은 1926년 2월 전남 신안군 증도면에서 4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고인은 외동딸을 두고 1951년 5월 입대했다.
그는 국군 2사단에 배치됐고, 1951년 8월2일부터 9월3일까지 강원도 철원 인근에서 벌어진 ‘734고지 전투'에 참전 중 8월15일 전사했다. 25살의 나이에 숨진 고인이 72년 만에 23일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고인의 유해는 2010년부터 2022년까지 13년간 세 차례에 걸쳐 수습됐다. 지난 2010년 6월께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육군 15사단 장병 100여명이 6·25전쟁 당시 개인호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유해 발굴 작전을 하던 중 고인의 넙다리뼈를 수습했다. 이후 2010년 10월, 지난해 11월 두 차례의 발굴을 통해 1차 발굴지점에서 약 12~40m 떨어진 곳에서 엉덩뼈, 넙다리뼈 등을 추가 수습했다.
전사자 유해 발굴 형태는 완전 유해와 부분 유해로 나뉜다. 완전 유해는 머리뼈부터 온 몸의 뼈가 온전히 보존된 경우를 말한다. 부분 유해는 뼈가 흩어진 형태로 일부만 발견되는 경우다. 전사자 유해는 부분 유해가 많다. 포탄 등에 신체 일부가 찢기거나 전사 후 산짐승이 유해를 훼손했을 때 부분 유해로 발견된다.
발굴된 고 김현택 일병 유해의 전체 골격.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고 김현택 일병 유해가 발견된 ‘734고지 전투’는 강원 철원군 적근산과 김화군을 연결하는 중부전선의 요충지로 치열한 공방전이 수차례 전개된 곳이다. 고인은 당시 포격 등으로 인해 신체 일부가 찢겼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0년 발굴 당시 유해 주변에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인과 함께했던 숟가락, 약병, 엠(M)1 소총 탄피 등 유품도 있었지만, 신원을 특정할 만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유해 발굴 당시 전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유품이 없으면 유해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확보한 유가족 유전자 시료들과 대조하는 게 유일한 신원 확인 방법이다. 유가족의 유전자 확보는 전사자들의 병적자료 등을 바탕으로 전국의 유가족을 찾아가는 기동 탐문을 통해 이뤄진다. 유가족을 찾기 위해서는 직접 관할 행정관서와 마을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은 쉽지 않다. 한국전쟁 당시 병적기록과 호적 등 행정 서류가 허술했고 남아 있는 기록도 손글씨로 흘려 쓴 한자여서 판독이 어렵다. 병적기록과 관공서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고 김현택 일병의 유품.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기동 탐문관은 고 김 일병의 병적자료에서 본적지(전남 신안군)를 확인한 뒤 행정관서의 제적등본 기록과 비교하여 2016년 4월 고인의 딸 김득례(73)씨를 찾아가 동의를 얻어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다. 이후 발굴된 고인 유해와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를 정밀 대조 분석하여 이들이 부녀 관계임을 확인했다. 유해발굴을 통해 수습한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212번째다. 김득례씨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서 인생의 숙제를 마친 기분”이라며 “유해를 찾기 위해 고생하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6·25전쟁 후 시간이 지나면서 참전용사와 유가족 고령화 등으로 유가족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발굴된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한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사자 유가족은 전사자의 8촌까지 유전자 시료 채취를 통해 신원 확인에 참여할 수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거동 불편 등의 이유 탓에 방문이 어려운 유가족에게는 직접 찾아가 유전자 시료를 채취한다. 제공한 유전자 정보로 전사자 신원이 확인되면 포상금 1천만원이 지급된다.
자세한 문의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대표 전화(1577-5625)로 하면 된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