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일간지에 실린 영화 ‘미워도 다시한번’ 4편 홍보 포스터. 한겨레 자료사진
“<미워도 다시한번> 4부가 있습니까?”
1973년 1월24일 판문점 판문각에서 이뤄진 남과 북의 비공개 ‘실무자 접촉’ 때 북쪽의 김덕현 조선노동당 중앙위 조직 담당 책임지도원이 남쪽의 정홍진 중앙정보부 협의조정국장한테 한 말이다.
<미워도 다시한번>은 1968년 7월16일 개봉한 신영균·문희 주연의 극영화로, 한국 멜로 영화의 대표작 중 대표작이다. 반응이 좋아 4편(1971년 2월6일 개봉)까지 제작된 당시 기준 최고 흥행작이었다. 가수 남진씨가 부른 같은 이름의 주제가도 큰 인기를 끌었다.
6일 통일부가 공개한 남북회담 사료를 보면, 김덕현의 요청에 정홍진은 “<미워도 다시한번>의 완결편은 다른 영화사의 제작입니다. 3부로 구성된 <미워도 다시한번>과는 달리 제작된 모양인데 복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극장에서 아날로그 필름을 돌리던 때라 ‘영화 필름’을 구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북쪽이 영화 <미워도 다시한번> 필름을 왜 원했는지는 회담사료에 나와 있지 않다. 다만 당시 북에서 사실상 ‘후계자’ 지위에 오른 김정일이 <영화예술론>(1973년 4월11일)을 발표하는 등 문화예술을 선전선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자칭 ‘영화광’이었던 사실에 비춰 ‘김정일 관람용’일 가능성이 있다.
남북 접촉 과정에서 북쪽만 영화 필름을 구한 건 아니다. 김덕현이 <미워도 다시한번> 4편을 구해달라고 한 바로 그 날, 남쪽은 북쪽에서 영화 <유격대 5형제> 1~3부 필름 38롤을 건네받았다.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 김일성의 만주 항일무장투쟁에 함께한 유격대 5형제를 다룬 영화로 ‘인민상 계관작품’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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