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12일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8’형 시험발사를 현지지도”하며 “미제와 남조선 괴뢰 역도들이 적대시 정책을 단념할 때까지 강력한 군사적 공세를 연속적으로 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13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지난 10·11일 두 차례 담화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남쪽의 정식 국호를 사용해 눈길을 끌고 있는 와중에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12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8형’ 2차 시험발사 현지지도 때 “남조선”이라는 기존 용어를 썼다. ‘대한민국’과 ‘남조선’의 섞어쓰기일까, 기존 용법으로 회귀일까, 그도 아니면 과도기 혼선을 포함한 다른 맥락이 있을까?
13일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총비서가 전날 ‘화성포-18형’ 시험발사 현지지도 때 “미제와 남조선 괴뢰 역도들이 적대시정책을 단념할 때까지 강력한 군사적 공세를 취해나갈 것”이라 밝혔다고 전했다. 눈길을 끄는 건 “남조선 괴뢰 역도들”이라는 김 총비서의 용어다. 앞서 김여정 부부장이 “위임에 따라” 발표한 두 차례 대미·대남 담화에서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써 주목을 받은 직후여서다. “위임에 따라”는 공식적으론 조선노동당 중앙위, 실제론 김정은 총비서의 ‘위임’이 있었다는 뜻이라 더 그렇다.
더구나 북쪽이 남쪽을 ‘외국’으로 여기는 듯한 “남조선의 그 어떤 인사의 ‘입국’도 허가할 수 없다”는 ‘외무성 국장 담화’(7월1일)를 낸 데 이어 김여정 부부장의 ‘대한민국’ 담화까지 이어지자, 우리 정부도 북쪽이 남북관계를 ‘통일지향의 특수관계’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여기는 듯한 여지를 보인 게 아니냐는 내부 판단을 하던 터다.
김 총비서의 ‘남조선’과 김 부부장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가장 먼저 살펴볼 대목은 두 발언이 실린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의 성격 차이다. 김여정 부부장의 두 차례 담화는 일반 인민이 접할 수 없는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만 실렸다. 반면 김정은 총비서의 ‘화성포-18형’ 시험발사 현지지도 발언은 북에서 가장 공식성이 높고 ‘인민의 필독 매체’인 <노동신문>에도 실렸다. <노동신문>은 김여정 담화 전후로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전처럼 “우리 민족” “남조선” 등의 기존 표현을 그대로 쓰고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해 7월27일 ‘전승절 69돌 기념행사 연설에서 “대남 대적(對敵) 정신”을 강조한 뒤론 “남조선 괴뢰 역도”라는 표현을 흔히 써왔다. 김여정 부부장도 10일 담화에서 “대한민국” 말고 “남조선 괴뢰 군부 패당들”이라는 표현도 함께 썼다.
요컨대 김정은 총비서와 김여정 부부장 모두 일반 인민들을 상대로 한 공식 발언·발표에선 남북 당국간 회담이나 합의 정도를 빼고는 ‘대한민국’이라는 남쪽 정식 국호를 입에 올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북쪽에서 ‘일국주의 국가성’을 강화하는 흐름이 뚜렷하지만, 남쪽을 ‘통일 지향 특수관계’가 아닌 외국으로 대하는 데까지 나갈지는 두고 볼 문제”라며 판단을 유보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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