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파주 통일대교 앞에서 국내외 참가자들이 종전평화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제공: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
5년 전 여름, 한반도에선 종전·평화의 기운과 희망이 넘실거렸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 그리고 남북·북미관계의 회기적인 개선에 합의하면서 평화는 손에 잡힐 듯 다가왔었다. 종전선언은 그 입구에 해당되는 듯했다. 이 선언을 통해 평화협정 협상의 문을 열고 비핵화에 추동력을 불어넣기로 남·북·미 정상들이 합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구겨지기 시작했다. 미국 주류와 한국 보수의 반격이 본격화되면서 종전선언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그해 6월 30일에 있었던 판문점 남·북·미 정상들의 회동도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낳았다. 이 자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한미연합훈련 취소를 약속했지만,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북한은 남북·북미대화의 문을 굳게 닫아걸고 핵무력을 국체로 삼기로 결심했다.
정치 지도자들이 주도한 평화프로세스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시민들이 소매를 걷어 올리고 나섰다.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이한 2020년부터 한반도 종전·평화를 촉구하는 서명운동 등 다양한 실천 활동에 펼쳤다. 정전협정 체결 70년이 된 2023년에는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진화되었다. 이 평화행동에는 700여개 국내 시민사회·종교 단체와 7대 종단, 그리고 70여개 국제 협력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한국 평화운동 사상 최대 규모라고 할 법하다.
이렇듯 정전 70년을 맞이해, 또 남·북·미 당국들의 종전·평화 외면 속에서도 국내외 시민사회는 활기찬 활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이에 무관심하다. 한미동맹 대 북한의 말폭탄 주고받기와 무력시위 공방전은 ‘속보’ 경쟁을 벌일 정도로 큰 비중을 두어온 반면에, 평화를 수호하려는 시민사회의 활동은 거의 ‘비보도’로 일관해왔다. 이에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공동상황실장을 맡아 종전·평화 활동을 주도해온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을 만나 지난 3년간 활동의 소회와 평가, 그리고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 한반도 종전평화 캠페인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본 캠페인은 ‘한국전쟁을 끝내고 휴전에서 평화로 나아가자!’는 목소리를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모아가는 국제 캠페인이다. 한국전쟁 발발 70년이었던 2020년에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이 오랜 논의를 거쳐 의기투합했다. 평화협정 체결이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사실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공감대를 넓혀보자고 뜻을 모았다. 정부만 믿을 것이 아니라 시민의 힘으로 평화를 만들자는 목표를 가지고 3년간의 거보를 내딛어보자고 결심했다.”
- 지난 3년간 어떤 활동을 해왔는가?
“가장 중요한 활동은 ‘한반도 평화선언(Korea Peace Appeal)’에 대한 전 세계 서명과 각계의 지지 선언을 모은 것이다. △적대를 멈추고 남북·북미 관계를 개선하자 △한국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한반도와 세계를 만들자 △제재와 군사 위협이 아닌 대화와 협력으로 갈등을 해결하자 △한미일 군사협력을 중단하고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공존을 실현하자 △군비경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시민 안전과 환경을 위해 투자 하자 등을 요구 사항으로 내걸고 1백만명의 서명을 목표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 촉구 국회 결의안, 접경지역 지방의회 결의안,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들의 서명을 모았고, 종교 지도자나 문화 예술인들의 동참도 이끌어냈다. 또 집회나 행진은 물론이고 직접행동, 퍼포먼스, 수많은 토론회와 간담회, 온라인 콘텐츠 제작 등에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종교인들이 한 마음으로 뛰었다.”
- 제일 큰 성과는 무엇인가?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널리 알린 것, 한반도 종전과 평화를 지지하는 전 세계 네트워크를 만든 것, 그리고 현재까지 18만명이 넘는 서명을 받은 것이 큰 성과이다. 또 서명에 동참하거나 온오프라인에 만나온 수많은 분들에게 메일링과 유튜브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한반도 평화 관련 소식을 지속적으로 전하고 있다.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와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더욱 크고 멀리 퍼질 수 있도록 하는 확성기 역할, 네트워크의 네트워크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더불어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하고,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협력하여 국제연대를 해나가면서 ‘잊힌 전쟁’이라고 불리는 한국전쟁 문제를 국제적으로 환기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 제일 아쉬운 점이 있다면?
“캠페인 기간이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와 겹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것이 제일 아쉽다. 동시에 평화의 희망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에게 있다는 단순한 지혜를 지난 3년 동안 거리와 온라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웠다. 이러한 깨우침이야말로 일희일비하지 않고 앞으로도 더욱 활기찬 활동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2020년부터 모아온 ‘한반도 평화선언’ 서명과 국제 캠페인의 결과를 올해 10월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 시기에 남·북·미·중 정부와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관련국들과 유엔이 전쟁 위기 해소, 무력 충돌 예방, 대화 재개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촉구할 것이다. 최근 본격화되고 있는 한미일 군사협력의 문제점을 알리고 중단을 촉구하는 활동도 이어갈 것이다.”
- 끝으로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명 결과를 유엔 총회에 가져가기 전에 최대한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면 좋겠다. 아직 서명에 동참하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꼭 서명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서명은 endthekoreanwar.net, 혹은 한반도종전평화.net에서 할 수 있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wooksi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