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전쟁구조와 한·미동맹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을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다.”
윤영상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연구조교수는 ‘한반도 전쟁구조와 한·미동맹’을 “한국 정치의 변화와 관련해 가장 핵심적으로 극복해야 할 세 가지 구조적 제약”의 하나로 꼽았다. 전후 70년이 지나도록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지 못하고, 다섯 차례 남북정상회담에도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루지 못하고, 그 와중에 ‘북핵 문제’는 날로 악화하는 현실은 ‘한반도 전쟁구조와 한·미동맹’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펴낸 ‘다시 진보의 길을 묻다’(나무와숲)에서 “(1987년) 6월항쟁이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속에서도 보수세력이 흔들리지 않고 강력하게 존재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이 한반도의 전쟁 질서”라고 짚었다. 그러고는 “북한과 미국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70여 년이 넘는 전쟁질서를 바꾸어낼 수 있다”면서도 “남한의 보수정치세력을 압도하고, 미국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조적 힘과 정치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남북 관계, 한·일 관계, 한·중 관계의 균형적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하늘의 뜻을 알 때’(知天命·지천명)라는 50대에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남한 정부의 한반도 냉전 해체 전략 연구’(2018년·북한대학원대학교)로 박사학위를 받은 까닭이다.
그는 지금 ‘반미’(反美)나 “1980년대식 진보운동의 복원”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예컨대 그는 한국 정치를 억누르는 ‘세 가지 구조적 제약’의 다른 하나로 “세계 자본주의 질서 속에 결박돼 성장해온 경제구조”를 지목하면서도 “한국 경제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 없이 성장도 분배도 추진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변화를 도모하되 ‘구조적 제약’을 간과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는 1983년 대학 입학 뒤 지금껏 ‘진보정치’의 터를 닦고 넓히려 애써왔다. 1985년 한국사회를 뒤흔든 미국문화원 점거농성사건으로 투옥·제적됐고, 석방 뒤 인천·경기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이후 진보정당추진위 정책국장, 민주노동당 정책위 부의장, 진보신당 정책위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요컨대 ‘진보정당 건설 운동’에 젊음을 바쳤다.
그는 “한국 진보정치운동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민주대연합과 정치적 독자성을 효과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것”이라며 “우리는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연대·연합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뒤집으면 한국 정치의 발전을 짓누르는 ‘구조적 제약’을 깰 방략은 여전히 정치적 독자성을 유지하며 ‘민주대연합’을 구현할 세력의 형성·강화, 곧 ‘두 날개 전략’의 현실화에 있다는 주장이다. 다만 ‘정치적 독자성’이 독자정당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7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민주대연합’과 ‘정치적 독자성’을 효과적으로 결합해 한국 정치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끝까지 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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