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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떠다니는 기지 링컨함

등록 2006-03-31 17:14수정 2006-04-02 15:46

지난 30일 부산 동남방 해상에서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 훈련에 참가중인 미군 핵추진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첨단 전투기 F/A-18이 출격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지난 30일 부산 동남방 해상에서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 훈련에 참가중인 미군 핵추진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첨단 전투기 F/A-18이 출격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항모승선기] 부시의 종전 선언으로 유명…건조비용만 45억달러
그곳에 도착하기는 예상보다 괴로웠다. 내외신 기자들을 태운 주한미군의 수송기 C-2기는 착륙 예정시각 30분전부터 심하게 요동쳤다. 정원 20여명의 작은 수송기가 기류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기어나오려는 구토를 가까스로 참아야 했다.

30일 오전 10시30분께 오산 공군기지를 출발한 C-2기는 1시간20여분만에 부산 동남쪽 120마일 동해 공해상에 착륙했다. 한미연합전시증원(RSOI)연습과 독수리연습(FE)에 참가중인 미국의 핵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의 갑판이었다. 2003년 5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착륙했던 그 항모의 그 갑판이었다. 그동안 미국의 핵항모가 동해 공해상에 나타난 적은 있지만, 훈련 목적으로 출연한 핵항모는 링컨함이 처음이다.

링컨함은 부시가 탄 헬기를 단번에 받아들여 득의만면한 그에게 “이라크 전쟁은 끝났다”고 승리를 선언할 기회를 제공했지만, 기자들이 탄 수송기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체가 활주로에 거칠게 닿는 느낌이 들면서 양은냄비가 떨그렁하는 듯한 소리를 듣고 이제 착륙하나보다고 한숨을 돌리는 순간, 창밖을 보니 기체는 어느새 상공으로 재부상하고 있었다. 1차 착륙에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5분 정도 손님을 긴장케 한 기체는 다시 떨그렁 소리와 함께 활주로에 착륙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착륙하기 직전 항공기 꽁무니에서 쇠갈고리 같은 것이 내려와 착륙 순간 활주로 바닥에 10m 정도 간격으로 깔려 있는 4개의 강철 로프(강제착함용 기어케이블) 중 한개에 걸려야 비행기가 멈추는데, 1차 시도에선 실패했다고 한다. 활주로가 워낙 짧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착륙을 하게 되는데, 항공모함이 파도에 조금만 뒤뚱거려도 ‘고리 걸기’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지난 30일 부산 동남방 해상에서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 훈련에 참가중인 미군 핵추진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첨단 전투기 F/A-18이 출격준비를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지난 30일 부산 동남방 해상에서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 훈련에 참가중인 미군 핵추진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첨단 전투기 F/A-18이 출격준비를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갑판에 내리는 순간 링컨함에 대한 첫 인상은 그 규모의 웅장함이나 위용보다는 콧속을 파고 드는 매큼한 휘발유 냄새였다. 비행기 멀미에다 휘발유 냄새 때문인지 세계에서 제일 큰 전함인 핵추진 니미트급 항모에서도 5번째라는 링컨함의 규모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제기되는 첫번째 질문은 ‘항모는 어디에 있느냐’였다”라는 미군쪽의 자부심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북한이 이번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과 독수리연습에 링컨함이 참가한 사실을 두고 왜 그렇게 요란스럽게 반응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같기도 했다.

간단한 점심을 마친 뒤 미군 전투기의 이착륙 훈련 상황을 지켜 볼 수 있었다. 축구장 세개만한 크기의 갑판위에선 FA18 전투기가 활주로를 100m 남짓 달려 가뿐히 이륙했다가 전체 332.8m 길이의 활주로에 다시 내려 단번에 정지하는 이착륙 훈련이 불과 20여분동안 십여차례 반복됐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뜨고 내리는 이 놀라운 기동성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항모였다. 북한 평양방송은 지난 29일 “미국은 반테러전의 미명 아래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때나 이라크를 침공할 때 주변 해역에 에이브러햄 링컨호를 비롯한 타격전단을 집결시키고 항공모함에 탑재한 전투기와 폭격기로 공격의 서막을 열었다”고 링컨호의 연습참가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미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지난 30일 부산 동남방 해상에서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 훈련에 참가중인 미군 핵추진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첨단 전투기 F/A-18이 출격준비를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미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지난 30일 부산 동남방 해상에서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 훈련에 참가중인 미군 핵추진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첨단 전투기 F/A-18이 출격준비를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데이빗 로스만 참모장(해군 대령)은 “하루 50~70회 이착륙 훈련을 하는데 한 사이클에 10회 뜨고 내린다”며 “오늘 여러분들이 본 것은 두번째 사이클”이라고 말했다.

미군은 이날 제공한 자료를 통해 항모의 임무에 대해 △평화시에 신뢰할 수 있고 지속적이고 독립적인 군사력의 전진 배치와 재래식 억지력을 제공하고 △위기시 연합해상증원군의 중핵으로 작전을 수행하며 △적에 대한 공습을 감행·지원하고, 우방군을 보호하고, 전시에 지속적인 독립작전을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항모는 미국의 이익과 약속을 뒷바침하기 위해 전세계에 배치되고 있으며, 평상시부터 전면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범위에서 전지구적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 단순히 덩치만 큰 괴물이 아니라, 미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움직이는 전략기지라는 얘기이다.

첨단 핵추진 항공모함으로 1989년 취역한 이후 처음으로 한반도에 모습을 드러낸 링컨함은 건조비용만 45억달러에 이른다.

FA18전대(전투비행대대), EA 호크아이(공중통제기) 전대, 헬기전대와 전자전 수행대대 등 9개 전대 70대의 비행기와 이지스함급 순양함 1척과 구축함 2척, 보급함 2척, 핵잠수함 2척등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호위함까지 거느리고 있다.

데이비드 로스만 참모장은 “한마디로 모든 장병들에게 모든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하나의 (자급이 가능한) 도시”라고 강조했다.

링컨호는 5600여명(여자 10%)의 해·공군 요원들이 탑승하고 9700톤이나 된다는데, 배 아래쪽 50피트만 바닷물에 담그고 둥둥 떠있을 있게 설계됐다. 멀리서 보면 투구 모양으로 생긴 건물(함교) 안에는 식당, 세탁시설, 체육시설 등 거의 모든 시설을 구비하고 있다. 3개의 수술실과 8명의 의사가 상주하며 하루 5번 식사가 제공된다. 하루 40만갤런의 물을 소비하는데, 바닷물을 퍼올려 담수화하는 장치가 있어 가능하다고 한다.

지난 30일 부산 동남방 해상에서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 훈련에 참가중인 미군 핵추진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첨단 전투기 F/A-18이 비행을 마치고 착륙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지난 30일 부산 동남방 해상에서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 훈련에 참가중인 미군 핵추진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첨단 전투기 F/A-18이 비행을 마치고 착륙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7층 높이의 함교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좁고 가파른 철제다리를 몇번 오르내리다보니 숨이 차올랐다. 함교 맨 꼭대기층의 조종실에는 첨단 전자장비가 갖춰져 있고 10여명의 요원들이 전방과 좌우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함교 1층에는 FA18 전투기와 E2 정찰기 등 비행기 수십대가 들어와 정비사들의 애프터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링컨함와 같은 니미츠급 항모는 1975년 첫 취역한 이래 현재 8척이 작전중이며, 스테니스와 투르먼함 등 두 척을 건조중이다. 미국은 1961년 핵항공모함 엔터 프라이즈를 취역시켰으나 재래식 항모의 두배에 달하는 건조비 때문에 핵항모 건조를 중단했다. 그러다 원자력기술의 발전으로 원자로의 숫자를 8개에서 2개로 줄이게 되면서 공간의 효율성이 늘어나, 선체 길이를 9m가량 줄인 니미츠급 항모를 만들 수 있게 됐다. 핵연료의 수명도 3년에서 13년으로 연장됐다.

니미츠급보다 한단계 위인 CVN78 항모는 내년부터 설계에 들어가 재래식 항모인 엔터프라이즈 호가 취역 50년을 맞는 2014년에 취역할 예정이다. 또한 CVN79도 재래식 항모인 케네디함을 대신해 2018년에 취역한다.

이번 한미연합전시연습 기간중 내외신 기자 10여명을 링컨함에 초대했던 미군쪽은 구체적인 작전이나 시설 공개를 꺼려했다. 과거 기자들에게 서너차례 항모를 공개할 때 자세한 브리핑을 해준 것과 달리 간략한 소개로 대신했다. 또 링컨함에 체류를 허용한 시간은 채 두 시간도 안됐으며, 북한과 관련한 질문에는 한결같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존 굿윈 링컨호 기동타격단 사령관(준장)은 링컨호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한국군과 협조하기 위해 왔을 뿐이다”라며 “노코멘트”라고 말했다.

앤드류 맥컬리 함장도 북한 관련 질문에는 일체 “노코멘트”라고 밝혔다. 그는 ‘다음번 연습에도 참가하는냐’는 질문에는 “아직 계획에 잡혀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08년 퇴역할 예정으로 일본 요코스카항에 배치돼 그동안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해왔던 재래식 항모 키티호크호 대신 배치되는 핵항모는 링컨함이 아니라 조지 워싱턴함이라고 바로 잡기도 했다. 한반도 근처인 일본 요코스카항구에 배치될 예정인 조지 워싱턴함 대신 굳이 링컨함을 이번 연습에 참가시킨 까닭은 분명치 않으나, 한반도 유사시 조지 워싱턴함과 함께 투입할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미군쪽이 조심스런 반응을 보인 것은 남북관계를 의식한 한국쪽의 요구에 따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합참의 관계자는 “이번 훈련과 관련해 미국쪽과 가능한 언론에 로우키(소극적 대응)로 대처하기 약속했다”고 귀뜸했다. 이번 취재에 동행한 한미연합사 공보담당자도 기자들에게 르포기사를 이번 연습이 끝난 뒤 게재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오산공군기지로 돌아오는 길도 갈 때와 마찬가지로 엄청 흔들렸다. 갈때보다 속은 덜 울렁거렸지만, 무엇인가에 눌린듯한 불편한 마음은 채가시지 않았다.

동해 공해 링컨함/<한겨레>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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