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S 이사장 법륜 스님
JTS 이사장 법륜 스님
대북 지원 민간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지난달 26일 북한 수해 주민 돕기 성금모금에 나선 한국제이티에스(JTS) 이사장 법륜 스님은 1일 서울 서초동 정토회 사무실에서 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큰물 피해가 1995년에 버금갈 만큼 심각하다고 본다”며 “민족적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도 긴급구호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대북 여론이 좋지 않은데도 북한 주민 수해 지원에 나선 배경은?
=북한의 큰물 피해가 95년에 버금갈 만큼 심각하다고 본다. 아직 확인 작업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큰물 피해 사망·실종자가 1만여명, 이재민 130만~15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소식마저 들려온다. 어찌됐든 이런 상황에서 북한 수재민 지원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은 양심적으로, 단체 설립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분들이 동참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다른 분들이 지원하지 않는다 해도 저희는 마땅히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의 집중호우 피해는 민족적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도 긴급구호 대상이 된다. 우리는 지난 5월 인도네시아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긴급 모금운동을 했고, 구호에 나섰다.
-북한의 수재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설마 그렇게 많은 피해를 입었을까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북한에 대한 정보가 워낙 없고, 확인할 곳도 없고, 또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96년 저희들이 식량 지원을 할 때도 대량 아사를 아무도 믿지 않았다. 98년에 북한 난민 1800여 명을 인터뷰해 낸 통계로 300만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나왔다. 그때 사람들은 너무 많다면서 30만명쯤 아니냐고 했다. 아무도 조사를 하지 않고서 막연히 그럴리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다. 또 중국에 있는 2500개 마을을 20명의 조사원이 6개월 동안 조사를 한 뒤 탈북 난만이 30만명 정도 있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은 3만명 정도 되겠지 라고 반응했다. 워낙 예상을 뛰어 넘는 사건들이라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막연이 우리 생각대로 말할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조사를 하고 정보를 수집해서 사실에 접근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정보가 더욱 차단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지금은 북한이 준전시상태이기 때문에 정보가 더욱 차단되고 있다. 그러나 저희들은 10년동안 대북 인도적 지원과 난민지원 사업을 하면서 어느 정도 정보를 알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있다. 또 저희들은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정보를 부풀려 왜곡할 이유도 없다.
-국제기구나 남쪽 민간단체들은 북쪽의 요청이 없어 지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북쪽에서 요청하기 전에 지원을 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급한 지원 품목이 무엇인지 알아봤는데 (북쪽의) 응답이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요청서를 보내면 도와주겠다는 식이나 도와줄까 어쩔까 자꾸 물어보는 식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북한에서 응답이 오지 않았어도 지원을 했을 것이다. 쓰나미 때 인도 정부도 스스로 복구할 수 있다며 지원 의사를 정중히 거절했지만, 우리는 인도에 들어가 지원 활동을 했다. 우리는 북한이라고 특별히 하는 것이 아니고 보편적 원칙대로 한다. -평양 시내는 피해가 심각하지 않다고 하던데. =평양은 대동강이 범람해서 물에 잠겼을 뿐 인명피해는 크지 않았다. 대동강 상류지역 피해가 크다. 황해남·북도, 강원도, 평안남도, 함경남도의 함흥 이남이 집중적인 피해를 입었다. 특히 평안남도 양덕군, 신양군, 맹산군, 강원도 금강군 등이 심하다. 대동강 상류의 평안남도 산간지방과 강원도에 내린 집중호우로 마을이 통째로 다 쓸려내려가 인명피해가 상당히 심각하다고 한다. 지역별·부문별로는 구체적으로 파악을 못하고 있다. 다만 평원선(평양~원산)이 두절돼 열차가 다니지 않으니까 버스나 택시 비용이 2~3배 가까이 올라서 장사하는 데 막대한 지장이 있다고 한다. 2차적으로 다른 지역도 물가 상승에 따른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북한의 홍수 피해 등으로 인한 식량난은 어느 정도로 예상하는지? =북한은 지난해 수확이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올 5월에 식량이 바닥이 나 직장을 다니지 않는 부양가족에 대한 식량배급이 평양에서도 중단됐다. 9월 말까지는 쌀과 옥수수 값이 계속 오르다가 10월 중순이 되면 30~40% 정도 떨어진다. 홍수까지 났으면 식량으로 인한 어려움이 굉장히 클 것이다. 내년 2월부터 춘궁기가 일찍 도래해, 외부 지원이 없으면 대량 아사 위기와 대량 난민이 또 발생할 수 있다. -남쪽에도 수재민이 많이 발생했는데 북쪽을 도울 여력이 있느냐는 여론도 있다. =여력이 있어야 도와준다는 것은 맞지 않다. 상대편이 나보다 더 어려우면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으면 먼저 도와줘야 하고, 여기 보다 10배나 100배 더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수해를 입은 사람이라도 일부를 떼어서라도 도와주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구걸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재민들이 도와달라고 아우성이어서 도와주는 건 아니지 않느냐. -95년 북한의 대홍수 때와 비교하면 어떤가. =95년에는 평안북도 신의주쪽의 피해가 아주 심했다. 지역적으로 그때보다 더 심하다는 사람도 있다. 비의 절대량은 적었지만 순간 폭우라서 큰 피해를 준 것 같다. 외적으로는 95년 상황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그때도 김영삼 정부가 식량을 외국에서 사서라도 북한에 지원을 하겠다고 했으나, 지원 선박의 국기 게양 사건으로 말썽이 나서 지방선거에 참패하고 난 뒤 지원이 중단됐다. 또 잠수함 사건 등 일련의 정치적 사건으로 국제사회가 대북지원하는 것까지 못하게 막았다. 그때는 국제사회는 긴장이 덜 돼 있었고, 남북간에는 긴장이 고조된 상태였다. 지금 상황도 잘 지원하다가 미사일 사건으로 남북간에 틀어지면서 경직됐다. 지금은 국제사회는 매우 긴장돼 있지만 남북관계는 민간부문이라도 열려 있어 긴장이 덜 돼 있는 상태다. 95년에는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이 한국사회의 긴장을 풀어주었다면, 이번에는 한국사회가 국제사회의 긴장을 풀어야 할 차례다. 한국 사회에서 인도주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 양심있는 지도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쪽 내부에서 대북 지원에 대한 피로도가 쌓여 지원 움직임이 96년에 비해 더딘 것 같다. =저는 종교인들과 시민사회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저는 보수적인 양심세력들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정치적 이념을 떠나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사물을 보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인들은 각자 자기 살기가 바쁘고, 북한의 저런 행동에 대한 감정적인 면이 앞서기 때문에 먼저 나서기가 힘들다. 조금 기분이 나쁘더라도 그것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양심에 근거해서, 사실에 근거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일부 사회지도자마저도 북한에 대한 배신감으로 감정에 치우쳐서 행동하고 있다. 그런 감정을 충분히 이해는 한다. 그러나 사회 지도자가 감정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엄청나게 나타난다. 사회 지도자들은 남북한의 긴장고조로 인한 한국 국민들이 받는 고통, 북한 주민이 받을 고통, 국익에 미칠 손실을 헤아려야 한다. -정부에서 쌀·비료 지원을 유보한 것에 대한 비판처럼 들린다. =인도주의적이라는 것은 전쟁상태에서도 상대방을 치료하고, 아이들이나 노인들은 보호해야 하는 정신이다. 지금은 전쟁상태도 아니고, 더욱이 북한은 우리 민족이다. 굶주림이라는 현실이 있는데 즉 인도주의 사안이 개선이 돼지 않았는데 지원을 중단하는 하는 것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인도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해서는 미국의 어떤 강경파도 반대할 수 없다. 물론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중단도 인도주의 원칙에 전혀 맞지 않는다. 늘 ‘우리민족끼리’를 얘기하면서도 이산의 아픔이 해결되지 앟은 상황에서 상봉 행사를 중단하는 것은 자신들의 주장과 맞지 않는다. 인도주의적 원칙에서 보면 지원이 확대돼야 하고, 이산가족 상봉도 확대돼야 하는 것이다. 남북 당국자와 지도자들이 감정에 치우쳐 시류에 편승하면 안된다. 어려울 때일수록 늘 근원적인 태도, 양심의 소리에 근거해야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 처럼 민주주의와 인도주의, 양심 이런 것에 깊은 뿌리를 두고 정치와 종교행위가 행해지지 않기 때문에 거센 바람이 불면 양심이 뿌리채 뽑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아니어도 종교적 양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시민 지도자, 학자는 이성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 또 한국 안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비이성적인 태도도 지적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레바논 사태에 대해 제나라 일이 아니어도 이성적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느냐. 통일을 지향한다면서 인민이 고통받는 것을 외면하고 어떤 통일을 하자는 것이냐. 정치·군사·영토적 통일을 너무 앞세우지 말고 민중의 복리를 중진하는 통일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정부의 쌀·비료 제공 유보의 배경에는 여러가지 현실적인 목적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을 보호하기 위한 도마뱀 꼬리 자르기 측면도 있고, 북한의 강경파를 견제하기 의도도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은 어렵게 쌓아온 남북관계의 성과라는 점에서 봐도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두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는 인도주의적인 원칙이 정치적·경제적인 원칙보다 우선해야 국가가 도덕성을 갖는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을 포기해서는 안되지만 극한 상황에서 만약에 포기하는 선택을 강요받는 다면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먼저 포기해야 한다. 물론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은 중단되면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고, 인도주의적 지원 중단은 중단되었더라도 필요하면 당장 재개하면 되지 않냐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수단의 편리함에 빠져 있는 것이다. 식량이 가지 않아 사람이 죽는 것은 몇배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내가 스님이 됐는지 모르겠다.(웃음) 두번째는 북한 체제의 특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북한이 체제 보호를 위한 입장과 태도는 경제적인 이익과 맞교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탕없이는 살 수 있어도 총알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지 않느냐. 안보 문제의 양보를 얻어내려고 경제카드를 쓴다면 먹히지 않는다. 60년동안 미국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안보리 결의에도 끄떡않는 북한을 인도주의적 지원 중단으로 양보를 얻어낼 수 있겠느냐. 인도적 지원이 계속되면 남쪽 여론의 비난은 받을 수도 있지만 북한 안에서 경제적인 개선을 하려는 사람의 입지는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남쪽 사람들에게 선택을 하라고 하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의 보호를 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내것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인간의 일반적 심성이니까 이해는 한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에 모든 것을 무조건 주라는 게 아니라, 이렇게 수재와 같은 특수한 경우에는 사람의 목숨을 더 소중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게 없으면 사람의 양심이라고 할 게 뭐가 있겠나. 특히 종교인은 자기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96년 북한 어린이를 돕자, 배고픈 아이를 돕자고 했을 때 강릉 잠수함 사건이 터졌다. 그 때 누군가 북한 도와주자는 얘기하면 맞아 죽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본, 그 북한 아이의 굶는 문제가 해결됐느냐? 당연히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굶은 아이를 보고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냈다가 무엇이 지금 나를 망설이게 하는가 생각해 봤다. 잠수함 사건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북한의 성인들이 그런 것이다. 아이는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가 아니다. 그러나 지원을 중단하면 피해는 어린아이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왜 과보가 정책 책임자에게 가지 않고 아이에게 돌아가야 하느냐. 내가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낼 때는 아이들을 보고 냈고, 망설일 때는 다름 사람을 보고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마음을 낸 목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이를 돕고자 시작한 지원 활동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이런 각성을 하고 그후 꾸준히 지원활동을 했다. 그렇게 해서 97년 굳어졌던 사람들의 마음이 풀려 <한겨레>를 비롯해 여러군데서 동참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쉽다. 다만 지원 활동을 하다가 실망을 하니까 재미는 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도주의 단체들은 출발할 때의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을 비판하는 인권단체들도 식량이 없어 죽는 북한 주민의 모습을 보고 인도주의를 내걸고 도와줘야 한다.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에 감정이 격해지면 무슨 행동이든 한다. 감정이 격해지면 ‘그래 죽여라 죽여’하며 옷을 벗고 배를 내놓고 오히려 총을 쏘라고 한다. 우리가 이런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러나 가능한 한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뒤에 오는 손실이 너무 크다. 지도자에 해당되는 사람일수록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자기 감정에 치우친 주장을 하지 말고,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이익, 인류의 보편적 원칙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도 수재를 입어 여러 어려움도 있고, 북 미사일 건으로 감정도 많이 상했고 아픔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보다 더 피해를 입었고, 북한 정부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북한 주민들을 깊이 헤아려 북한 수재민을 돕는 일에 국민이나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앞장서 줬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냥 아무런 조건없이 지원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글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국제기구나 남쪽 민간단체들은 북쪽의 요청이 없어 지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북쪽에서 요청하기 전에 지원을 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급한 지원 품목이 무엇인지 알아봤는데 (북쪽의) 응답이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요청서를 보내면 도와주겠다는 식이나 도와줄까 어쩔까 자꾸 물어보는 식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북한에서 응답이 오지 않았어도 지원을 했을 것이다. 쓰나미 때 인도 정부도 스스로 복구할 수 있다며 지원 의사를 정중히 거절했지만, 우리는 인도에 들어가 지원 활동을 했다. 우리는 북한이라고 특별히 하는 것이 아니고 보편적 원칙대로 한다. -평양 시내는 피해가 심각하지 않다고 하던데. =평양은 대동강이 범람해서 물에 잠겼을 뿐 인명피해는 크지 않았다. 대동강 상류지역 피해가 크다. 황해남·북도, 강원도, 평안남도, 함경남도의 함흥 이남이 집중적인 피해를 입었다. 특히 평안남도 양덕군, 신양군, 맹산군, 강원도 금강군 등이 심하다. 대동강 상류의 평안남도 산간지방과 강원도에 내린 집중호우로 마을이 통째로 다 쓸려내려가 인명피해가 상당히 심각하다고 한다. 지역별·부문별로는 구체적으로 파악을 못하고 있다. 다만 평원선(평양~원산)이 두절돼 열차가 다니지 않으니까 버스나 택시 비용이 2~3배 가까이 올라서 장사하는 데 막대한 지장이 있다고 한다. 2차적으로 다른 지역도 물가 상승에 따른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북한의 홍수 피해 등으로 인한 식량난은 어느 정도로 예상하는지? =북한은 지난해 수확이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올 5월에 식량이 바닥이 나 직장을 다니지 않는 부양가족에 대한 식량배급이 평양에서도 중단됐다. 9월 말까지는 쌀과 옥수수 값이 계속 오르다가 10월 중순이 되면 30~40% 정도 떨어진다. 홍수까지 났으면 식량으로 인한 어려움이 굉장히 클 것이다. 내년 2월부터 춘궁기가 일찍 도래해, 외부 지원이 없으면 대량 아사 위기와 대량 난민이 또 발생할 수 있다. -남쪽에도 수재민이 많이 발생했는데 북쪽을 도울 여력이 있느냐는 여론도 있다. =여력이 있어야 도와준다는 것은 맞지 않다. 상대편이 나보다 더 어려우면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으면 먼저 도와줘야 하고, 여기 보다 10배나 100배 더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수해를 입은 사람이라도 일부를 떼어서라도 도와주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구걸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재민들이 도와달라고 아우성이어서 도와주는 건 아니지 않느냐. -95년 북한의 대홍수 때와 비교하면 어떤가. =95년에는 평안북도 신의주쪽의 피해가 아주 심했다. 지역적으로 그때보다 더 심하다는 사람도 있다. 비의 절대량은 적었지만 순간 폭우라서 큰 피해를 준 것 같다. 외적으로는 95년 상황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그때도 김영삼 정부가 식량을 외국에서 사서라도 북한에 지원을 하겠다고 했으나, 지원 선박의 국기 게양 사건으로 말썽이 나서 지방선거에 참패하고 난 뒤 지원이 중단됐다. 또 잠수함 사건 등 일련의 정치적 사건으로 국제사회가 대북지원하는 것까지 못하게 막았다. 그때는 국제사회는 긴장이 덜 돼 있었고, 남북간에는 긴장이 고조된 상태였다. 지금 상황도 잘 지원하다가 미사일 사건으로 남북간에 틀어지면서 경직됐다. 지금은 국제사회는 매우 긴장돼 있지만 남북관계는 민간부문이라도 열려 있어 긴장이 덜 돼 있는 상태다. 95년에는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이 한국사회의 긴장을 풀어주었다면, 이번에는 한국사회가 국제사회의 긴장을 풀어야 할 차례다. 한국 사회에서 인도주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 양심있는 지도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쪽 내부에서 대북 지원에 대한 피로도가 쌓여 지원 움직임이 96년에 비해 더딘 것 같다. =저는 종교인들과 시민사회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저는 보수적인 양심세력들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정치적 이념을 떠나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사물을 보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인들은 각자 자기 살기가 바쁘고, 북한의 저런 행동에 대한 감정적인 면이 앞서기 때문에 먼저 나서기가 힘들다. 조금 기분이 나쁘더라도 그것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양심에 근거해서, 사실에 근거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일부 사회지도자마저도 북한에 대한 배신감으로 감정에 치우쳐서 행동하고 있다. 그런 감정을 충분히 이해는 한다. 그러나 사회 지도자가 감정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엄청나게 나타난다. 사회 지도자들은 남북한의 긴장고조로 인한 한국 국민들이 받는 고통, 북한 주민이 받을 고통, 국익에 미칠 손실을 헤아려야 한다. -정부에서 쌀·비료 지원을 유보한 것에 대한 비판처럼 들린다. =인도주의적이라는 것은 전쟁상태에서도 상대방을 치료하고, 아이들이나 노인들은 보호해야 하는 정신이다. 지금은 전쟁상태도 아니고, 더욱이 북한은 우리 민족이다. 굶주림이라는 현실이 있는데 즉 인도주의 사안이 개선이 돼지 않았는데 지원을 중단하는 하는 것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인도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해서는 미국의 어떤 강경파도 반대할 수 없다. 물론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중단도 인도주의 원칙에 전혀 맞지 않는다. 늘 ‘우리민족끼리’를 얘기하면서도 이산의 아픔이 해결되지 앟은 상황에서 상봉 행사를 중단하는 것은 자신들의 주장과 맞지 않는다. 인도주의적 원칙에서 보면 지원이 확대돼야 하고, 이산가족 상봉도 확대돼야 하는 것이다. 남북 당국자와 지도자들이 감정에 치우쳐 시류에 편승하면 안된다. 어려울 때일수록 늘 근원적인 태도, 양심의 소리에 근거해야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 처럼 민주주의와 인도주의, 양심 이런 것에 깊은 뿌리를 두고 정치와 종교행위가 행해지지 않기 때문에 거센 바람이 불면 양심이 뿌리채 뽑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아니어도 종교적 양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시민 지도자, 학자는 이성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 또 한국 안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비이성적인 태도도 지적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레바논 사태에 대해 제나라 일이 아니어도 이성적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느냐. 통일을 지향한다면서 인민이 고통받는 것을 외면하고 어떤 통일을 하자는 것이냐. 정치·군사·영토적 통일을 너무 앞세우지 말고 민중의 복리를 중진하는 통일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정부의 쌀·비료 제공 유보의 배경에는 여러가지 현실적인 목적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을 보호하기 위한 도마뱀 꼬리 자르기 측면도 있고, 북한의 강경파를 견제하기 의도도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은 어렵게 쌓아온 남북관계의 성과라는 점에서 봐도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두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는 인도주의적인 원칙이 정치적·경제적인 원칙보다 우선해야 국가가 도덕성을 갖는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을 포기해서는 안되지만 극한 상황에서 만약에 포기하는 선택을 강요받는 다면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먼저 포기해야 한다. 물론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은 중단되면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고, 인도주의적 지원 중단은 중단되었더라도 필요하면 당장 재개하면 되지 않냐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수단의 편리함에 빠져 있는 것이다. 식량이 가지 않아 사람이 죽는 것은 몇배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내가 스님이 됐는지 모르겠다.(웃음) 두번째는 북한 체제의 특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북한이 체제 보호를 위한 입장과 태도는 경제적인 이익과 맞교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탕없이는 살 수 있어도 총알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지 않느냐. 안보 문제의 양보를 얻어내려고 경제카드를 쓴다면 먹히지 않는다. 60년동안 미국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안보리 결의에도 끄떡않는 북한을 인도주의적 지원 중단으로 양보를 얻어낼 수 있겠느냐. 인도적 지원이 계속되면 남쪽 여론의 비난은 받을 수도 있지만 북한 안에서 경제적인 개선을 하려는 사람의 입지는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남쪽 사람들에게 선택을 하라고 하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의 보호를 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내것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인간의 일반적 심성이니까 이해는 한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에 모든 것을 무조건 주라는 게 아니라, 이렇게 수재와 같은 특수한 경우에는 사람의 목숨을 더 소중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게 없으면 사람의 양심이라고 할 게 뭐가 있겠나. 특히 종교인은 자기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96년 북한 어린이를 돕자, 배고픈 아이를 돕자고 했을 때 강릉 잠수함 사건이 터졌다. 그 때 누군가 북한 도와주자는 얘기하면 맞아 죽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본, 그 북한 아이의 굶는 문제가 해결됐느냐? 당연히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굶은 아이를 보고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냈다가 무엇이 지금 나를 망설이게 하는가 생각해 봤다. 잠수함 사건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북한의 성인들이 그런 것이다. 아이는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가 아니다. 그러나 지원을 중단하면 피해는 어린아이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왜 과보가 정책 책임자에게 가지 않고 아이에게 돌아가야 하느냐. 내가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낼 때는 아이들을 보고 냈고, 망설일 때는 다름 사람을 보고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마음을 낸 목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이를 돕고자 시작한 지원 활동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이런 각성을 하고 그후 꾸준히 지원활동을 했다. 그렇게 해서 97년 굳어졌던 사람들의 마음이 풀려 <한겨레>를 비롯해 여러군데서 동참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쉽다. 다만 지원 활동을 하다가 실망을 하니까 재미는 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도주의 단체들은 출발할 때의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을 비판하는 인권단체들도 식량이 없어 죽는 북한 주민의 모습을 보고 인도주의를 내걸고 도와줘야 한다.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에 감정이 격해지면 무슨 행동이든 한다. 감정이 격해지면 ‘그래 죽여라 죽여’하며 옷을 벗고 배를 내놓고 오히려 총을 쏘라고 한다. 우리가 이런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러나 가능한 한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뒤에 오는 손실이 너무 크다. 지도자에 해당되는 사람일수록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자기 감정에 치우친 주장을 하지 말고,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이익, 인류의 보편적 원칙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도 수재를 입어 여러 어려움도 있고, 북 미사일 건으로 감정도 많이 상했고 아픔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보다 더 피해를 입었고, 북한 정부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북한 주민들을 깊이 헤아려 북한 수재민을 돕는 일에 국민이나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앞장서 줬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냥 아무런 조건없이 지원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글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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