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미국 노력 지지”에 미, 희망 섞어 발언한듯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28일(한국시각),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4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연장과 레바논 평화유지군 파병을 약속했다고 밝혀 논란을 빚었다.
청와대는 힐 차관보의 발언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며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한-미 정상회담 때 두 정상 사이에는 이라크 파병 연장안의 미래에 대한 얘기는 전혀 논의된 바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또 “레바논 파병 문제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윤 대변인은 정상회담과, 그 이후 열린 오찬에 직접 참석한 인사다.
정부의 한 당국자도 “정상회담 및 오찬장에서 우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와 외교통상부 관계자가 두 정상의 대화록을 꼼꼼히 다 받아 적었고, 그 내용을 다시 살펴봤지만 그런 언급은 없었다”며 “당시 힐 차관보는 두 정상의 대화를 기록하지 않은 만큼 우리가 더 정확하다”고 단언했다.
정부 당국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미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의 언급은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국제적인 차원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지지” 표명 정도였다고 한다. 한 당국자는 “당시 노 대통령의 원론적인 발언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한국 정부 뿐 아니라 한국 국민에게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 고통받고 있는 국가들에게 한국이 군사적 지원을 해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사의를 표명했다”며 “힐 차관보가 두 정상간에 오간 이 말을 오해했거나, 이라크 파병 연장을 바라는 미국의 희망을 섞어서 발언한 것”이라고 말한다.
힐 차관보도 이날 하원 국제관계위 청문회 도중 한국 기자들과 만나, “파병연장은 한국 국회가 결정할 문제이고, 파병연장 문제에 대한 논의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정부 설명에 어느 정도 힘을 실어준 셈이다.
그렇지만 당국자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말끔히 가시지는 않는다. 당장 “정상회담 당시 노 대통령이 ‘그 결정은 쉬운 게 아니었지만, 그 당시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는 힐 차관보의 발언의 경우, 정부는 이 발언 자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다만 고위 외교 소식통은 “노 대통령의 당시 발언은 과거 이라크 파병안 결정이 쉽지 않았는데,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그런 결정을 했다는 뜻일 뿐, 파병연장을 말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청와대는 향후 우리 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중단할 것인지, 아니면 연장할 것인지에 대해 여전히 “결정된 바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청와대 한 핵심 관계자는 “이라크 파병 연장이나 중단 문제는 아직 정부 안에서 어느 쪽으로도 방침이 정해진 게 없다”며 “지금 딱 잘라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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