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철 북 대표 베이징 도착 19일 중국을 방문한 북한의 오광철 조선무역은행 총재가 취재진을 피해 베이징 서우두 공항을 급히 빠져 나가고 있다. 오 총재는 북-미간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동결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실무협상의 북한쪽 대표를 맡았다. 베이징/연합뉴스
‘칩거’ 끝낸 북 양자협의 잰걸임
미·러·중 남한과 잇단 접촉…BDA회의 보며 전략 짤듯
북한이 19일 오후부터 발빠른 행보를 보이며 6자 회담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6일 베이징에 도착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 북한 대표단은 중국과 양자접촉을 빼고는 공식 회의에만 참석하며 사실상 ‘칩거’했다. 이 때문에 19일 오전까지는 비관적 전망이 높았다. 김 부상은 실제 첫날 기조연설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강조했으나 이어 모든 제재의 해제, 핵군축회담 제기, 미국의 ‘대북 적대시 법률·제도 철폐’ 등 ‘하고 싶은 얘기’만 쏟아냈다.
북한이 이런 ‘초강수’로 나오는 한 한국 등이 목표로 삼은 ‘초기 단계 이행 조처’ 및 중국이 제시한 분야별 워킹그룹 구성 논의는 명함도 내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 부상이 ‘유엔 제재 해제’를 ‘현존 핵프로그램 포기 논의’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운 걸 두고,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 임기 중에 실질 협상이 어렵다고 판단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방코 델타 아시아’(BDA·비디에이) 등 금융문제를 다룰 북-미 실무협의가 시작된 것과 때를 같이하는 변화다. 북한은 이날 오후 미국과 1시간 남짓의 양자협의를 시작으로 러시아, 중국, 남한과 잇따라 따로 만났다. 정부 당국자는, 남북이 “화기애애하게 흉금을 터놓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북쪽이 “정치적 수사보다는 아주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사안에 대해 상세하게 얘기했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이 18일 기조연설에서 제기한 ‘핵군축회담’은 “현재 이슈가 아니다”라고 잘라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의 급작스런 태도 변화를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초강수’로 일관한 북한의 18일 기조연설 내용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다소 의외였다. 미국이 “과거 협상 기록을 되돌아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라며 덤덤한 공식 반응을 보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회담장 주변에선 미국은 금융 문제를 다룰 북-미간 실무(워킹)그룹회의 상황을 봐가며 북한이 실제 회담에 임할 것으로 예상했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북한이 6자 회담 재개에 합의하며 금융제재 해제를 선결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이 이 문제의 진전 가능성을 모든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회담 전망을 낙관할 수는 없겠지만, 회담 분위기는 의외로 쉽게 바뀔 수도 있다. 북한이 비디에이에 ‘올인’하듯 집착할수록 미국이 이 문제를 대북 협상의 유력한 지렛대로 삼아왔다는 지적이 그동안 적지 않았다. 뒤집어 보자면, 6자 회담이 다시 열린 지금 미국이 북핵 폐기에 우선 순위를 두고 비디에이 문제에서 유연한 자세를 보인다면, 의외로 교착상태에 빠진 회담을 협상 분위기로 반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차 6자 회담에 참여했던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4차 6자 회담 땐 북-미 양자접촉을 13차례나 했다. 9·19 공동성명은 그런 과정을 거쳐 나왔다. 그때 ‘외교의 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다.” BDA 실무협의의 윤곽이 드러나는 20일이 되면 6자 회담이 외교적 협상의 장이 될지 좀 더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미국도 협상자세 유지…
“강경자세는 북 협상방식…놀랄 일도 아니다”
미국은 5차 6자 회담 2단계 회의 첫날인 18일 북한의 기조연설 내용을 ‘예상했던 일’로 보고 있다. 오히려 북한의 강경자세에도 미국이 협상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는 긍정적이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처음에 최대한의 요구를 내세우는 게 북한의 협상 방식”이라며 “과거 협상 기록을 되돌아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회담은 어려운 협상이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도, “일부 조기 성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도 19일 오전 “9·19 공동성명 이행이라는 맥락에서 봤을 때 (첫날) 진전을 발견하지 못했다”면서도 “오늘(19일) 회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자”고 여지를 뒀다.
하지만 미국 쪽 전문가들의 회담 전망은 여전히 비관적이다.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 협상에 미국 쪽 부대표로 참여했던 게리 세이모어 미 외교협회(CFR) 부회장은 “북한은 늘 해오던 방식대로 부시 행정부가 마지막에는 클린턴 행정부처럼 좀더 타협적이고 유연해질 것이라고 믿고 유리한 제안을 할 때까지 (협상을 하는 척만 하며 시간을 끌면서) 기다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베이징/이제훈 기자 hoonie@hani.co.kr
그런데 미국은 북한의 급작스런 태도 변화를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초강수’로 일관한 북한의 18일 기조연설 내용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다소 의외였다. 미국이 “과거 협상 기록을 되돌아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라며 덤덤한 공식 반응을 보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회담장 주변에선 미국은 금융 문제를 다룰 북-미간 실무(워킹)그룹회의 상황을 봐가며 북한이 실제 회담에 임할 것으로 예상했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북한이 6자 회담 재개에 합의하며 금융제재 해제를 선결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이 이 문제의 진전 가능성을 모든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회담 전망을 낙관할 수는 없겠지만, 회담 분위기는 의외로 쉽게 바뀔 수도 있다. 북한이 비디에이에 ‘올인’하듯 집착할수록 미국이 이 문제를 대북 협상의 유력한 지렛대로 삼아왔다는 지적이 그동안 적지 않았다. 뒤집어 보자면, 6자 회담이 다시 열린 지금 미국이 북핵 폐기에 우선 순위를 두고 비디에이 문제에서 유연한 자세를 보인다면, 의외로 교착상태에 빠진 회담을 협상 분위기로 반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차 6자 회담에 참여했던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4차 6자 회담 땐 북-미 양자접촉을 13차례나 했다. 9·19 공동성명은 그런 과정을 거쳐 나왔다. 그때 ‘외교의 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다.” BDA 실무협의의 윤곽이 드러나는 20일이 되면 6자 회담이 외교적 협상의 장이 될지 좀 더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미국도 협상자세 유지…
“강경자세는 북 협상방식…놀랄 일도 아니다”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19일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의 한 호텔을 나서고 있다. 베이징/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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