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중국 베이징 조어대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우다웨이 중국 수석대표가 6개국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6자회담 합의 이후] 국내외 전문가에게 들어본 의의와 과제
베이징 6자회담에서 난산 끝에 태어난 ‘2·13 합의’는 북핵 폐기를 통한 한반도 평화구조 정착으로 가는 대장정의 첫 걸음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남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어 험로가 예상되지만, 일단 핵문제를 실질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의미있는 협상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이번 합의의 의의와 과제, 전망을 들어본다.
서동만/상지대 교수
라이스 방북등 의사표시 있어야
생각보다 상당히 진전된 합의다. 북-미간 협상이 성과를 거둔 것 같다. 베를린에서 이미 기본적인 부분은 합의된 것으로 봐야 한다.
물론 갈 길은 멀다. 핵문제를 두 단계로 나눠 이번에는 핵시설 폐기에만 합의하고, 그 이후 부분은 일단 미뤄둔 것이다. 상황이 더 악화하지는 않는 선에서 관리하면서 궁극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핵 폐기와 보상만으로 보면, 단순하다. 핵 폐기의 기술적 단계에 맞춰서 중유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등은 굉장히 막연하다. 이를 어떻게 상응조처와 연결시키는가가 어려운 부분이다. 핵심은 북-미 관계 정상화다. 제네바 합의 때도 ‘중유 50만t 지원 대 동결’ 까지는 갔지만, 그 이후 북-미 관계 정상화로 나아가진 못했다.
이번에도 이 문제를 두고 미국 강경파와 온건파의 합의가 가능할지가 불확실하다. 중동 정세에 전념하기 위한 선에서 멈출 것인지, 이번의 동력을 살려 관계 정상화를 가속화하려는 것인지가 불투명하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정도의 정치적 의사 표시가 이뤄지지 않으면, 현상 동결 수준의 합의에 머물게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차분한 자세로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 과욕을 부려서도, 소극적이어서도 안 된다. 남북 정상회담의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정권 말기라는 점이 역시 부담이다. 실제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얻어낼 수 있을지를 잘 타산해서 결정해야 한다.
전재성/서울대 교수(외교학과)
북-미 서로 엇나갈 경우 대비를
‘행동 대 행동’ 단계로의 진입은 성과다. 눈여겨 볼 것은 60일 이후이다. 핵 시설 폐쇄를 ‘불능화’ 쪽으로 접근시키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에너지 지원을 북한의 불능화 이행과 연동한 것만으론, 불능화를 강제할 수 없다. 핵심은 역시 북-미 관계다.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도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북한은 실무그룹에서 이 정도만으로는 불능화를 실행할 수 없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여차하면 제재 트랙으로 돌아가려 할 것이다. 북한이 처음부터 주한미군 철수와 평화체제 등의 담보를 요구하면 협상은 깨진다.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 정도에 머물려고 해도 협상의 진전은 어렵다. 아직까진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개선과 핵 폐기의 길로 들어선 게 아니다. 60일 안에 신뢰를 쌓고, 그 기반 위에서 북-미간 전략적 결단이 내려질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한국 정부는 북-미가 서로 엇나가는 경우에도 준비를 해야 한다. 북한도 협상, 미국도 협상으로 나오는 구도에선 한국 정부가 잘해왔다. 하지만 한쪽이 엇나가거나, 둘 다 협상에서 이탈할 경우도 상정해야 한다.
북-미관계가 핵심인 한, 남북정상회담은 북핵문제 해결엔 크게 도움을 주기 어렵다. 오히려 북한 경제에 도움을 줘, 북한이 미국과 더 어긋나게 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남북관계의 진전엔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재개돼야 한다. 애초 이를 끊은 것은 잘못이다. 그보다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엔 형식적으로라도 참여하되 인도적 지원은 계속함으로써, 북한이 국제사회의 기준에 맞게 행동하도록 이끌었어야 했다고 본다.
고든 플레이크/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
시작이 절반…핵폐기 협상 돌입을
기대 이상이다. 사실 나쁜 결과를 예상했는데, 초기단계 이행조처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핵무기,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경수로 문제 등 의미있는 핵문제를 다룰 수 있는 협상 환경이 만들어졌다. 북한의 행동 수준에 지원을 연계시킨 것은 잘 한 일이다. 영변핵시설 동결은 상징적 의미가 있긴 하지만, 북한은 95만t을 추가로 받기 위해선 의미있는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힘들고 어려운 협상을 앞에 두고 있지만, 시작이 절반이다.
일부에서는 북한만 핵 폐기를 일방적으로 양보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이번 합의는 적당한 양보로 적당한 환경을 마련한 첫 행동이다. 합의문을 보면, 실무그룹들이 독립적이라고 하면서도 연계되어 있다는 앞뒤가 잘 안 맞는 말이 있다. 따지고 보면 비핵화 실무그룹에 진전이 없으면 북미정상화 실무그룹도 진전이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동시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부터 어려운 과정의 시작이다. 제네바합의 때처럼 협상을 맡았던 협상대표(로버트 갈루치)가 협상 직후 교체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계속 맡든가, 아니면 더 고위인물이 책임을 맡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점에서 존 네그로폰테 부장관의 대북정책조정관 기용설은 나쁜 일만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핵프로그램만 협상했다. 북한은 경수로를 지어줘야 핵무기를 내놓겠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핵무기를 포기해야 경수로를 줄 수 있다는 반대 입장이다. 완전한 핵 폐기를 위해 이 문제에 대해 곧바로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기미야 다다시/도쿄대 교수·한국정치외교 전공
대북정책, 일본만 외길 고집 못해
이번 6자회담 합의내용에 대해서는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할 수 없다. 우선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와 똑같다는 비판도 있지만, 2단계를 설정해 이행확인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 데다 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 내용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농축 우라늄 문제와 핵무기 폐기 문제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일본 정부가 ‘납치문제 해결 없이는 지원은 없다’는 입장에 대해 각국으로부터 양해를 얻었다고 하지만, 2단계에서도 양해를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미국이 대북 정책을 180도 바꾼 상황에서 아베 신조 정권은 기존의 대북 강경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북문제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내세워온 아베 정권으로서는 정체성 문제가 걸려 있어 획기적인 전환은 어렵겠지만, 외교적인 면에서 일본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 어렵다. 이번 회담에서 나타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정책전환을 보고 아베 총리는 초조감을 갖게 될 것 같다.
안전보장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핵문제와 납치문제를 하나로 놓고 생각하는 것은 외교적인 면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일본 외교관들도 잘 알고 있다. 강경일변도 정책으로 납치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나도 지지하겠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약속이행 여부와 관련해 2단계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단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북한도 구체적인 약속을 한 이상 약속이행 책임이 크다. 약속이 깨지면 한국에서도 더 이상 북한을 봐주라는 여론은 발을 붙이기 어려울 것이다.
리둔추/중국 국무원 한반도연구중심 주임
북한은 이번 기회 놓치지 말아야
이번 회담은 성공적이었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양보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낳았다. 북한은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가기로 합의했고, 미국은 이에 발맞춰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처를 개시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체제가 들어설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될 것이다.
미국은 중간선거 이후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에서 조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이른바 온건파의 입지가 강화됐다. 이라크와 이란 문제도 이번 회담에서 미국의 타협적인 태도를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경제적 어려움을 돌파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뿐만 아니라, 이런 정치적 상황에 대한 전략적 고려를 했을 것이다.
이번 합의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중요한 기틀로서 손색이 없다. 중국은 휴전협정 서명국으로서 이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데 진력할 것이다.
한국 역시 남북대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정치적 동력을 확보했다. 일본 역시 고립을 피하려면 이런 과정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합의에 6자 회담을 외무장관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방안이 상정된 것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앞으로 비핵화까지 가는 과정에서 세부적인 문제들이 불거질 것이다. 이번 합의에서도 핵 폐기의 대상과 일정 등에서 불명확한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전반적인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중국 속담에 “좋은 기회란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다”란 말이 있다. 북한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라이스 방북등 의사표시 있어야
서동만/상지대 교수
전재성/서울대 교수(외교학과)
북-미 서로 엇나갈 경우 대비를
전재성/서울대 교수
고든 플레이크/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
시작이 절반…핵폐기 협상 돌입을
고든 플레이크/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
기미야 다다시/도쿄대 교수·한국정치외교 전공
대북정책, 일본만 외길 고집 못해
기미야 다다시/도쿄대 교수·한국정치외교 전공
리둔추/중국 국무원 한반도연구중심 주임
북한은 이번 기회 놓치지 말아야
리둔추/중국 국무원 한반도연구중심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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