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6자회담이 타결된 13일 중국 베이징 조어대에서 열린 폐막회의에 앞서 천영우 남쪽 수석대표(왼쪽)와 김계관 북쪽 수석대표가 손을 맞잡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94년 제네바 때부터 북핵협상 참여 ‘손금 꿰듯’
김계관 슬쩍 떠본 에너지 요구, 천영우 즉각 반격
김계관 슬쩍 떠본 에너지 요구, 천영우 즉각 반격
지난달 16~18일 베를린 북-미 협상 때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발언이 너무도 진지하고 전향적이었기 때문이다. 힐 차관보는 적잖이 감동했고, 많은 ‘합의’를 했다. 핵실험과 유엔제재 및 대북 금융제재로 충돌했던 북-미간 신뢰가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힐 차관보가 몰랐던 게 있다. 베를린 협의 때 김 부상이 대미 요구사항으로 내놓은 것의 상당 부분이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과정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북-미 협상의 역사를 꿰고 있는 김 부상한테, 동유럽 전문가인 힐 차관보가 한수 배운 셈이다.
김 부상은 제네바합의 협상 때 북쪽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2000년 10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도 수행했다. 북-미간 중요 협상에 거의 참석한 노장이다. 6자 회담에서도 처음부터 참여한 수석대표는 그뿐이다.
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 초기 김 부상은 초기단계 비핵화 조처의 상응조처로 ‘전력 200만KW에 상응하는 에너지 지원’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슬쩍 내비쳤다. 그러자 일부 나라 수석대표들이 이를 합의문서에 담자고 맞장구치고 나왔다.
북-미간 핵협상의 역사를 제대로 몰라 김 부상의 요청이 9·19공동성명에 언급된 한국의 대북 중대제안(전력 200만KW 제공)을 거론한 것으로 오인한 측면도 있고, 대북 지원에서 자기 몫을 줄이려는 ‘꼼수’도 작용했다.
이에 한국 수석대표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즉각 반격했다. 한국의 중대제안은 비핵화 완료 뒤 북쪽 에너지 문제 해결의 선택사항의 하나로 북핵폐기 초기단계 조처와 무관하다는 점, 김 부상의 요구는 제네바합의 완전 이행을 전제로 2003년부터 200만K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었을 테니 그 ‘외상값’을 달라는 주장이라는 점을 지적해 논의의 방향을 완전히 돌려버렸다.
그리곤 역공을 펼쳤다. “모호한 합의는 없느니만 못하다”며 △대북 지원에 대한 각국의 분담 몫을 평등·형평의 원칙에 따라 명확히 할 것 △북쪽의 실천 정도에 상응조처를 연동하는 일종의 ‘성과급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둘 다 최종 합의문서에 담겼다. 외교부의 국장급 간부는 14일 “94년 제1차 북핵위기 발발 이후 국제원자력기구 및 유엔 안보리의 북핵 협의, 대북 경수로 건설 협상 등에 참여하며 갈고 닦은 비확산 다자외교 전문가로서의 협상력이 이번에 빛을 발했다”고 평가했다.
북핵 문제가 언론의 관심사가 될 때마다 외교부 청사 18층 천 본부장의 사무실에서 열리는 ‘봉숭아 학당’에서 그의 ‘강의’를 들어온 취재진은, 2·13 합의 직후 브리핑을 하러온 그를 뜨거운 박수로 맞이했다.
베이징/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베이징/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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