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각국 접촉 협상
북-미·한-미간 잇단 접촉 갖고 ‘관계 재정립’
3월1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방미와 이어지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의 북한 방문은 비핵화를 통한 북-미관계 정상화를 상징한다. 이를 전후해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과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그리고 잭 크라우치 백악관 안보 부보좌관, 존 네그로폰테 국무부 부장관의 상호 방문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이어진다. 한미 외교·안보 핵심 책임자들의 상호 방문이 북-미 관계 정상화와 비핵화를 보완하는 구도다.
또 24일 워싱턴 국방장관회담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최종 합의에 이어, 한미는 3월말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마무리를 시야에 넣고서 3월6일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의 방한 등 상호 고위급 접촉을 벌이고 있다. 말 그대로 외교안보·경제통상에 이르는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협력 관계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3월 이후 정세에서 핵심 포인트는 두 가지다.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의 동시 진행이 가능할 것인지, 한미동맹의 전환과 한반도 평화의 동시적·선순환적 관계가 가능할 것인지다. 3월 초 워싱턴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공식 협의를 시작할 예정인 송 장관은 기자들에게 ‘입체적인 시각’을 주문했다. 전작권 환수는 한반도평화체제 협상을 촉진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화협정 체결에서 남북의 주도적 역할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또 북-미 관계 정상화에서 미국의 대북 적성국 교역법 배제는 FTA 협상의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인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이 가능한 길을 열어놓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IAEA 총장 방북은 멍석깔기?
북, 미에 관계정상화 촉구 뜻…미 “이행 검증 환영” “정말로 좋은 신호다.” 북한이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북한 방문을 요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한 말이다. 캐나다를 방문중이던 라이스 장관은 23일(현지시각) “우리는 북한의 원자로를 폐쇄·봉인할 앞으로 60일 안의 (6자 회담 2·13)합의 이행을 검증할 수 있도록 국제원자력기구가 북한에 복귀할 수 있게 돼 정말로 아주 기쁘다”고 덧붙였다. 토니 프래토 백악관 부대변인도 주말 브리핑에서 “우리가 그 합의를 이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엘바라데이 사무총장)가 돌아와서 어떤 내용을 보고할지 관심을 갖고 있는데, 분명히 긍정적일 것이라는 게 우리 견해”라고 논평했다. 북한의 엘바라데이 총장 방북 초청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반응은 이렇게 환영 일색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초기 조처 이행의 강력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는 북한이 지난 13일 끝난 5차 6자 회담 3단계 회의 합의 이후 60일 안에 취하기로 약속한 초기 조처, 곧 “궁극적인 포기를 목적으로 재처리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했는지를 검증하려면 국제원자력기구와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쪽은 국제원자력기구와 협력의 첫 발을, 이 기구 사무총장 방북 초청이라는 ‘고위급 협의’ 카드로 내딛기 시작한 것이다.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1997년 취임 이후 지금껏 한번도 북한을 방문하지 못했다.
북한의 이런 전격적인 행보는 자신들의 6자 회담 합의 이행 의지가 강력함을 과시함으로써, 다음달 초 뉴욕에서 진행될 북-미 관계정상화 초기 협의 등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뜻도 담겨 있다. ‘비핵화-관계정상화’의 신속하고도 질서정연한 이행으로 가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원자력기구 대변인은 엘바라데이 총장이 다음달 5~9일 이사회를 마친 뒤 3월 둘째 주쯤 방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원자력기구 고위 관리들은 지난 몇달 동안 북한 외교관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며 사찰단 복귀 문제를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북-IAEA, 15년 악연 씻을까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지금까지 관계는 ‘불신·반목·갈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1992년 북한을 상대로 첫 핵 사찰을 벌여, 북한이 89·90·91년 세 차례에 걸쳐 플루토늄을 추출했으며 그 추출량은 kg단위라고 밝혔다. 90년 단 한차례 90g을 추출했다는 북쪽의 자진신고 내용과 현격한 차이가 났다. 90년대 초반 이라크 핵 사찰 실패로 곤경에 처한 한스 블릭스 당시 사무총장 체제의 국제원자력기구가 명예회복을 내걸고 영변 핵시설을 이 잡듯이 뒤진 결과다. 그 뒤 양쪽은 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및 94년 5월 북한의 핵연료봉 인출 등으로 갈등을 거듭하다, 그해 10월 북-미 제네바기본합의로 갈등관계를 봉합됐다. 그러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문제에서 비롯된 2002년 10월 제2차 북핵 위기 발발 이후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는 다시 충돌했다. 그해 12월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내어 핵동결 해제 선언을 하자, 국제원자력기구는 핵안전협정 준수를 촉구했다. 그러나 북쪽은 곧바로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의 추방으로 맞대응했다. 이렇게 북-미관계의 고빗길마다 반목과 충돌을 거듭해온 양쪽이, 북한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의 북한 방문 초청을 계기로 새로운 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IAEA 총장 방북은 멍석깔기?
북, 미에 관계정상화 촉구 뜻…미 “이행 검증 환영” “정말로 좋은 신호다.” 북한이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북한 방문을 요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한 말이다. 캐나다를 방문중이던 라이스 장관은 23일(현지시각) “우리는 북한의 원자로를 폐쇄·봉인할 앞으로 60일 안의 (6자 회담 2·13)합의 이행을 검증할 수 있도록 국제원자력기구가 북한에 복귀할 수 있게 돼 정말로 아주 기쁘다”고 덧붙였다. 토니 프래토 백악관 부대변인도 주말 브리핑에서 “우리가 그 합의를 이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엘바라데이 사무총장)가 돌아와서 어떤 내용을 보고할지 관심을 갖고 있는데, 분명히 긍정적일 것이라는 게 우리 견해”라고 논평했다. 북한의 엘바라데이 총장 방북 초청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반응은 이렇게 환영 일색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초기 조처 이행의 강력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는 북한이 지난 13일 끝난 5차 6자 회담 3단계 회의 합의 이후 60일 안에 취하기로 약속한 초기 조처, 곧 “궁극적인 포기를 목적으로 재처리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했는지를 검증하려면 국제원자력기구와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쪽은 국제원자력기구와 협력의 첫 발을, 이 기구 사무총장 방북 초청이라는 ‘고위급 협의’ 카드로 내딛기 시작한 것이다.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1997년 취임 이후 지금껏 한번도 북한을 방문하지 못했다.
북한의 이런 전격적인 행보는 자신들의 6자 회담 합의 이행 의지가 강력함을 과시함으로써, 다음달 초 뉴욕에서 진행될 북-미 관계정상화 초기 협의 등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뜻도 담겨 있다. ‘비핵화-관계정상화’의 신속하고도 질서정연한 이행으로 가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원자력기구 대변인은 엘바라데이 총장이 다음달 5~9일 이사회를 마친 뒤 3월 둘째 주쯤 방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원자력기구 고위 관리들은 지난 몇달 동안 북한 외교관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며 사찰단 복귀 문제를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북-IAEA, 15년 악연 씻을까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지금까지 관계는 ‘불신·반목·갈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1992년 북한을 상대로 첫 핵 사찰을 벌여, 북한이 89·90·91년 세 차례에 걸쳐 플루토늄을 추출했으며 그 추출량은 kg단위라고 밝혔다. 90년 단 한차례 90g을 추출했다는 북쪽의 자진신고 내용과 현격한 차이가 났다. 90년대 초반 이라크 핵 사찰 실패로 곤경에 처한 한스 블릭스 당시 사무총장 체제의 국제원자력기구가 명예회복을 내걸고 영변 핵시설을 이 잡듯이 뒤진 결과다. 그 뒤 양쪽은 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및 94년 5월 북한의 핵연료봉 인출 등으로 갈등을 거듭하다, 그해 10월 북-미 제네바기본합의로 갈등관계를 봉합됐다. 그러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문제에서 비롯된 2002년 10월 제2차 북핵 위기 발발 이후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는 다시 충돌했다. 그해 12월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내어 핵동결 해제 선언을 하자, 국제원자력기구는 핵안전협정 준수를 촉구했다. 그러나 북쪽은 곧바로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의 추방으로 맞대응했다. 이렇게 북-미관계의 고빗길마다 반목과 충돌을 거듭해온 양쪽이, 북한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의 북한 방문 초청을 계기로 새로운 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