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비료 이면합의’ 논란 뜯어보니
통일장관 ‘발언번복’ 빌미로
통일장관 ‘발언번복’ 빌미로
2일 평양에서 막을 내린 제20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대북 쌀·비료 지원과 관련해 ‘이면 합의’를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남들 모르게 ‘뒤에서 숨겨놓고 한’ 합의는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미 그 정도는 남북 당국이 말하지 않아도 전문가는 물론이고 언론도 알 수 있는 범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면 합의’라는 주장의 첫째 근거는 공동보도문에 쌀·비료 지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일종의 ‘속임수’가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쌀은 2005년 제15차 장관급회담 때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 의제 정도로 공동보도문에 명시된 적이 있지만, 장관급회담에서 구체적인 규모 따위가 적시된 적은 없다. 비료도 마찬가지다.
물론 장관급회담이 남북 양쪽의 요구를 확인하고 주고받는 ‘종합 회담’인 만큼, 남북 대표단이 큰 틀에서 쌀·비료의 규모나 시기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식을 비롯한 실제 ‘계약’은 경협위 등 ‘하위 회담’을 통해 이뤄졌다. 국회 동의처럼 남쪽의 여론을 듣는 절차가 남은데다, 경협위와 같은 ‘하위 회담’을 활성화하려는 ‘전략적’인 고려도 있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북쪽이 이번에 요구한 규모는 쌀 40만t과 비료 30만t 정도다. 설령 북쪽의 요구를 다 받아들여도 2000년 이후 실제 매년 지원량인 쌀 40만∼50만t, 비료 30만∼35만t의 최저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논란의 빌미가 되는 발언을 한 것은 문제다. 이 장관은 회담을 끝내고 서울에 돌아와 연 브리핑에서 북쪽의 쌀·비료 요구량을 제시한 뒤, “양쪽이 합의한 게 그렇다”고 대답했다가 10여분 뒤에야 “합의하고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실수 하나로 성공적인 회담 성과의 절반을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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