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신호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4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고위 간부들과 함께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했다고 <중앙통신>이 5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중국대사관 방문은 한 발 더 나아간 ‘통 큰’ 행보를 예고해 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문이 류샤오밍 중국 대사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며, 류 대사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구두 친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친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방문에는 김기남 노동당 비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리용철 당 제1부부장, 김양건 국방위원회 참사, 김정각·현철해 군대장, 최부일 상장, 김영일 외무성 부상, 박경선 당 부부장이 동행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문은 긴밀한 북-중 관계를 과시하려는 상징적인 조처 이상의 의미가 있다. 김 위원장의 방문이 북-중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방문을 2000년 3월 중국대사관 방문과 비교하는 시각이다. 김 위원장은 두 달 뒤인 같은 해 5월 비공식 중국 방문을 통해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함으로써 한-중 수교 이래 멀어졌던 북-중 관계를 복원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 사전 협의를 했다. 2001년 7월에도 김 위원장의 중국대사관 방문이 있었고, 그 뒤 김 위원장은 한 달 가까운 러시아 방문에 나섰다. 이 두 가지만 놓고 보면 김 위원장이 국제 외교무대에 등장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물론 당시의 방문은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중국에 사전 통보하는 것으로서 중국 중시의 자세라 할 수도 있다.
또 좀 더 긴 호흡으로 되돌아보면, 2000년 3월 김 위원장의 중국대사관 방문은 북한과 주변국 관계 정상화의 출발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북-중 정상회담(5월)→남북 정상회담(6월)→북-러 정상회담(7월)→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방미(10월)→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방북(10월) 등이 숨가쁘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김 위원장이 만난 류샤오밍(51) 평양 주재 중국 대사는 지난해 8월 부임하면서 클라크 란트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를 만나 자신의 임기 중에 북한과 미국이 수교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한 소식통은 류 대사가 △북한과 미국의 수교 △조지 부시 대통령의 방북 △평양에 미국대사관 개설 등 ‘세 가지 소원’을 밝혔다는 것이다. 최근의 정세는 그의 소원이 불가능한 일 같아 보이지 않는다.
이용인 기자,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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