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을 출발한 북쪽 열차가 17일 낮 군사분계선을 넘어 강원 고성군 제진역을 향해 힘차게 내달리고 있다. 왼쪽 두번째와 세번째 가로등 사이가 군사분계선이다. 고성/연합뉴스
경의선 새마을호 군사분계선 지날 때 “소원은 통일” 합창
동해선 남행열차,들녘 가로질러 “뿌우우” 여행 분위기
동해선 남행열차,들녘 가로질러 “뿌우우” 여행 분위기
[남북열차 시험운행 하던 날]
반세기를 기다려온 기차는 세 번의 긴 기적소리를 토해내더니 어둡고 아팠던 분단의 역사를 뚫고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개성까지 달려간 경의선=17일 오전 11시28분 파주시 문산역, 민족 번영의 희망을 상징하는 오색 폭죽이 화창한 하늘을 수놓았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 백낙청 6·15공동위원회 상임대표 등 남쪽 승객 100명과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 김철 철도성 부상 등 북쪽 승객들은 환하게 웃었다.
경의선 새마을호 7435 열차(기관사 신장철)는 문산역을 출발해 북쪽으로 향했다. 힘차게 달리던 기차는 낮 12시18분께 한반도의 허리를 갈라놓은 분단의 벽, 동족상잔의 비극이 서린 군사분계선(MDL)을 가로질렀다. 역사의 한 장이 새로 쓰여지는 순간 남북 탑승객들은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이 장관 등은 한반도기를 흔들면서 권홍웅 참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불렀다.
판문역에 도착한 남쪽 7432호 열차는 남북 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멀리서 마중했다. 열차가 오후 1시3분께 개성역에 도착하자 개성시 인민위원장 등이 나와 맞이했다. 소년단복을 입은 선죽중학교 남녀 학생 120여명이 길 양쪽에 서서 ‘조국통일’을 외치며 환영했다. 1950년 12월31일 마지막 경의선을 몰았던 기관사인 한준기(80)씨는 “옛날에는 개성역 주변으로 기와집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달라져서 알아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개성시 자남산여관 오찬장에서 이재정 장관은 “오늘 우리는 그저 남에서 북으로 넘어온 것이 아니라 반세기 분단의 시대, 반목과 대결의 어두운 역사, 불신으로 얼룩졌던 마음의 장벽을 넘었다”며 감격해했다. 선죽교를 돌아보던 박용길(89) 통일맞이 명예이사장은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이곳에 소풍왔을 때는 피 색깔이 빨갰는데 지금은 희미하다. 하긴 세월이 수십년이 흘렀으니 …”라며 옛 추억에 잠겼다.
오후 3시03분 열차는 개성역에서 방향을 바꾸어 앉았다. 북쪽의 환송을 뒤로 한 채 열차는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금강산 출발한 동해선=오전 11시27분 북쪽 금강산역에서도 디젤전기기관차인 내연 602호 기관차(기관사 로근찬)와 객차 5량으로 이뤄진 북쪽 동해선 열차가 ‘뿌우우’ 기적소리를 울리며 출발했다.
남쪽 인사들은 ‘안녕~’ 하면서 승강장에 환송 나온 북쪽 인사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환송 나온 고성제일고등중학교 4~5학년 학생 등도 손을 흔들었다. 남쪽 탑승자는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 신언상 통일부 차관, 소설가 이호철씨 등 100명, 북쪽 탑승자는 김용삼 철도상, 주동찬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 등 50명이었다.
열차가 역을 빠져 나간 뒤 곧 금강산도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멀어졌다. 철로 주변에는 아직 모내기를 하지 않은 물 댄 논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김일성 전 주석이 직접 탔다는 북쪽 열차는 북쪽, 남쪽 인사가 서로 마주보게 좌석을 배치했다. 친한 친구들끼리 이미 사라진 경춘선 비둘기호를 타고 짧은 여행을 떠나는 분위기였다. 낮 12시21분 북쪽 동해선 열차가 군사분계선을 넘자 객차 안에선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북쪽 열차는 낮 12시34분 남쪽 제진역에 도착했다. 남북 탑승자들은 동해선 도로출입사무소에서 나란히 정성스레 차려진 한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개성역과 제진역에 멈춰선 남북 열차들은 앞으로 더 달려나가진 않았다. 오후 3시께 다시 북으로 남으로,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30분 뒤 열차는 다시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4시간 남짓한 아쉬운 ‘시험운행’은 남북 열차 정식개통의 날을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경의선·동해선/공동취재단,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열차 시험운행 경의선 출발 행사가 열린 17일 오전 문산역에서 이재정(왼쪽) 통일부 장관과 권호웅 북쪽 내각참사가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손짓과 박수를 보내고 있다. 파주/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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