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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북, ‘철의 실크로드’ 실현 적극성 가져야”

등록 2007-05-18 19:32수정 2007-05-18 20:48

김효순 <한겨레> 대기자(왼쪽부터), 문정인 국제안보대사, 이봉조 통일연구원장, 강재홍 한국교통연구원장이 17일 남포시 영남 배수리공장에서 남북 경협 방안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남포/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김효순 <한겨레> 대기자(왼쪽부터), 문정인 국제안보대사, 이봉조 통일연구원장, 강재홍 한국교통연구원장이 17일 남포시 영남 배수리공장에서 남북 경협 방안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남포/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평양 양각도에서 ‘통일열차’를 논하다

문정인 국제안보대사, 이봉조 통일연구원장, 강재홍 한국교통연구원장이 역사적인 남북 열차 시범운행을 하루 앞둔 16일 밤 평양 대동강 양각도호텔에서 ‘남북 열차 시험운행’의 의미 등을 놓고 좌담회를 했다. 남쪽 경제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한 이들은 이날 밤 10시부터 1시간여 이 호텔 47층 회전식당에 모여 김효순 〈한겨레〉 대기자의 사회로 이야기를 나눴다. 열차 시범운행을 주제로 얘기를 시작했으나 뒤쪽으로 가면서 ‘경제대표단의 방북 경협토론회’의 의미와 성과, 전망을 포함한 북의 개혁·개방을 화두로 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혁명의 수도’ 평양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대동강 한가운데 양각도가 있다. 그 양각도 국제호텔 47층 회전식당에 3명의 연륜이 있는 남쪽 전문가들이 모였다. 문정인 국제안보대사, 이봉조 통일연구원장, 강재홍 한국교통연구원장이 16일 밤 10시부터 1시간여 김효순 <한겨레> 대기자의 사회로 주거니 받거니 말을 이어갔다. ‘남북 열차 연결 시험운행’과 ‘민간 경제대표단 방북 경협 토론회’의 의미와 성과, 전망 등이 화두로 던져졌다. 북쪽이 자랑하는 ‘룡성맥주’ 한 잔씩이 말밑천이 됐다. 남북 관계의 진전을 상징하는 열차 시험운행과 경공업-지하자원 협력의 신경협 방식이라는 두 사안이 2·13합의, 한반도 평화체제의 가능성과 연결되면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그동안 돌아가는 식당 유리창 밖으론 평양의 밤 풍경이 스쳐갔고, 맥주잔은 바닥을 드러냈다.

문정인 국제안보대사 / 이봉조 통일연구원장 /강재홍 한국교통연구원장 / 김효순 <한겨레> 대기자
문정인 국제안보대사 / 이봉조 통일연구원장 /강재홍 한국교통연구원장 / 김효순 <한겨레> 대기자

김효순=항만·조선등 분야별로 짜인 남쪽 민간 경제대표단이 북에 와서 북쪽 당국자와 진지한 협의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또 평양 현지에서 한반도 정세를 전망하고 이번 행사를 결산하는 차원에서 남북관계 전문가들을 모시고 좌담을 여는 건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일단 17일 경의·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에 대한 평가로 시작해보자. 이번 시험운행이 일회성이라는 점을 들어 북쪽의 소극적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봉조=시험운행 자체가 곧 바로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의 연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건 어떻게 보면 경제성 있는 철도 운영을 위한 첫 단계 조처에 불과한 문제다. 또 북쪽은 철도 시험운행보다는 경공업 원자재 제공이라든가, 기술협력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게 아닌가 본다. 우리가 방문했던 류원신발공장, 봉화피복공장, 평양화장품공장 등에서 북쪽 관계자들이 보여준 태도는 매우 진지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철도연결 보다는 경공업 합의서 이행에 더 역점을 두는 게 북쪽의 전반적 분위기가 아닌가 본다.


강재홍=같은 생각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최근 느낀 것은 북쪽에서 철도가 갖는 민감성이다. 북쪽의 교통체제를 보면 화물의 90%, 여객의 60%가 철도로 수송되는 ‘주철 종도’ 구조다. 또 시험운행에서 군부 뜻이 결정적이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철도의 군사적 의미가 강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번 열차 시험운행의 큰 의미는 남북 사이에 철도를 이어서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의식의 전환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철도 전반에 대한 새로운 사고의 틀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리라고 본다.

김=북의 소극적 태도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남쪽의 많은 국민들은 시험운행이 아시아·유럽 철도와의 연결로 이어져 이제 부산에서 모스크바, 바르샤바까지 열차로 간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중·장기적으로 어떤 조건들이 갖춰져야 이런 전망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문정인=남과 북 사이에 철도를 보는 시각 차가 있다. 김정일 북쪽 국방위원장은 남북 열차 연결을 중국횡단철도(TCR),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의 연결이라는 개념을 갖고 보는 것 같다. 남쪽도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모두 남북 철도 연결을 ‘철의 실크로드’라는 개념 아래 대륙으로 향하는 새로운 모멘텀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북의 일반 관료들은 그런 생각을 못하는 것 아닌가 싶다. 남북의 실무진 사이에 인식 차가 크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경의·동해선 연결은 대장정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신뢰구축을 위한 첫 단계라고 보고 싶다. 북과 남 군부의 시각 차이도 크다. 우리는 장기적 사업의 일환으로 보는 반면, 북은 북방한계선(NLL) 문제 해결 없이는 일시적 조처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북쪽 군부가 시험운행을 수용했다는 것이 작년 5월과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시험운행은 남북 경협을 위한 중요한, 그러나 조심스런 전초전이 아닌가 싶다. 물론 초보 중의 초보적인 움직임이다. 시베리아횡단철도는 동해선을 연결해 나진을 거쳐 러시아 핫산으로 가는데, 남쪽은 현재 저진~강릉과 삼척~포항 사이 210㎞가 비어있고, 나진~핫산 또한 여객 수송은 하지만, 화물은 오가지 못한다. 남북 그리고 러시아간에 3각 협력이 필요하다.

북도 앞으로는 좀 더 성의있게 나와야 한다. 이번 민간 경제대표단으로 강 원장을 포함해서 남쪽의 핵심적인 철도 교통 전문가들이 왔는데 평양역 하나 보여주지 못하면 무슨 협력을 하겠는가. 협력을 하려면 진정한 마음으로 협력해야 하는데, 북쪽 관료들이 국방위원장의 진심을 알고 일하는지 회의적이다.

강=경제대표단 방북을 통해 남북간의 온도차가 크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우리 연구원에 북한교통정보센터를 만들었는데, 가장 절실한 것이 정보 교류다. 남북 모두 철도와 관련해 갖는 애로점이 있다. 북은 당연히 철도 현대화와 개량 문제이고, 남쪽도 나름대로 수도권의 용량이 포화상태에 있다는 문제 등이 있다. 처음 실무자끼리 만나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의미는 있지만, 시각차가 너무 커 당황했다고 할까? 우리가 몇가지 제안을 던진 것으로 끝났다. 그 자체가 의미있고 처음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외교적인 언사로나마 어떤 답변을 들을 줄 알았는데, 아쉬움이 있었다.

하나 더 말하면, 지금 우리가 기대하는 남북철도 또는 대륙철도 연결의 꿈과 북의 반응엔 큰 차이가 있다. 국제철도가 되기 위해선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의 기준으로 하루 1000㎞를 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시속 40㎞가 돼야 하는데, 지금 북의 철도 사정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열악하다. 그런 것들을 서로 터놓고 얘기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가 한 제안 가운데 하나가 남과 북의 기술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용어를 표준화하고, 교육센터를 개성 쯤에 만드는 것이다. 또 구체적 경제협력사업으로 북쪽에서 화차를 생산하게 해 남쪽에서 사용하고 산업화하는 쪽까지 얘기했는데, 얘기의 단초는 만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는 것이 아쉽다.

이=북과 관련된 부분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우리 내부의 문제를 얘기하고 싶다. 지금 남북간 철도연결을 대륙으로 가는 철도와 연결한다는 큰 구상에서 보면 우리의 준비도 역시 미흡하다. 논의조차 충분치 못한 상태다. 남북관계에서 보면 북쪽의 여러 소극적 태도를 지적할 수 있지만, 우리 내부를 보면 대륙철도와의 연결에 대한 정부와 관련부처, 연구기관 사이에 공감대가 미흡하다. 북의 자세는 우리가 상당히 인내심을 갖고 협의할 부분이지만, 우리 내부에서 대륙철도와의 연결사업을 추진할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등에 관한 진지한 협의가 같이 수반돼야 할 것으로 본다.

강=남쪽의 경우, 시험운행 다음에 부닥칠 난관이 경제성 문제가 될 것이다. 투자 대비 효과가 있나? 남북철도와 대륙철도가 정말 실질적인 교통수단 내지 운송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나? 그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이런 부분을 머리를 맞대고 답을 구해야 한다.

문=경의·동해선 때문에 북의 모든 인력이 고성과 개성에 내려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무를 책임지는 박정성 철도성 국장이 경제대표단 토론회에 참여했다는 것은 북의 지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이번 민간 경제대표단의 토론회는 그동안의 남북 경협이 총론에 머물러 있었다면 각론을 얘기한 최초의 행사일 것이다. 이번 토론회 주제엔 철도, 항만, 조선, 경공업, 자동차, 유리도 들어가 있다. 이를 분과별로 나눠 각론적인 토론을 했다는 점은 엄청난 변화다. 북쪽에서 해당기관의 책임있는 사람들이 와서 성의있게 토론에 임했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북쪽 스스로가 총론 중심의 남북경협에서 각론 중심의 경협과 제도, 법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같은 생각이다. 압축적으로 표현하면, 이번 경제대표단 방북과 토론회, 산업현장 방문은 거창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혁명의 수도가 경협의 수도로 거듭나기 위한 시도’다. 그래야만이 김정일 위원장이 갖고 있는 북의 생존전략이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여지를 이번 경제대표단 방북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물론 충분하진 않다. 방문한 경공업 공장에서 북쪽 지배인이나 기사장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한 것들이 있다. 공장에 남아 있는 공간은 새로운 설비를 설치할 공간이라거나, 남쪽 원자재, 유휴설비가 제공되면 생산량을 훨씬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남쪽과의 협력을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혁명 수도’의 요소가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분명히 경협의 수도가 되기 위한 몸부림을 볼 수 있었다.

강=‘혁명의 수도가 경협의 수도’라는 정도의 비유는 아니지만, 이번에 새로운 말을 하나 배웠다. 문 교수 말씀대로 철도 책임자가 경의·동해선 시험운행으로 바빠서 도저히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왔는데, 박정성 국장이 토론회에 나타나서 처음 한 얘기가 ‘우리는 수송을 생산이라고 한다’는 말이었다. 수송을 생산의 한 분야로 본다’는 것이었는데, 피터 드러커가 그 비슷한 얘기를 한 게 생각났다. 철도를 굉장히 중요한 핵심산업으로 보고 있는 것인데 교통을 통해서 남북간의 협력에 새로운 틀이 짜여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든다. 철도 당국자가 토론에 나온 것은 큰 진전으로 본다.

김=남쪽의 기업인들이 대거 방북해 북쪽 당국자와 논의한 것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남쪽 기업인들의 반응이 어땠는지도 중요하다고 본다.

문=아직 불확실성이 많은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북이 생각하는 것은 사회주의, 그것도 주체경제다. ‘주체경제’라는 것은 채산성과 이윤이 중요한 게 아니고 인민 복리를 생각한다는 건데, 남쪽은 ‘히트 앤드 런’(치고 빠지기)이다. 투자해서 짧은 시간에 이익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북쪽에선 이해가 안된다고 한다. 남쪽에선 장사가 돼야 오는 거고, 짧은 시간에 벌어서 떠나는 게 목적이라고 하면, 그게 어떻게 동포냐, 우리는 그런 기업과는 사업 못한다는 반응이다. 이런 인식의 괴리를 어떻게 좁혀 나가느냐, 그것은 결국 북의 문제다. 자본주의 돈을 가져오려면 자본주의 법과 제도를 주체 경제 틀 안에서 최대한 보장하지 않으면 안오는 것이다.

둘째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차이다. 중소기업은 엄청난 불안감을 느낀다. 북쪽도 중소기업과는 협상을 많이 해봤는데 결국 안되더라는 것이다. 그럼 대기업은 어떻게 오느냐? 대우의 김우중, 현대의 정주영 다 떠나고 이제는 안온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오고 그에 따른 하청기업이 오고, 그래서 새로운 경제권 돼야 남의 자본이 체계적으로 오고 북쪽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와도 결국은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과 연결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데 북쪽의 고민이 있다. 오늘 만난 한 북쪽 인사는 “한국 대기업은 미국 시장이 큰데, 북쪽에 진출했다가 우리가 미국과 사이가 나빠져서 떠나면 북 경제가 흔들린다”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북쪽의 통치이념을 감안하면 중소기업이 바람직하지만 중소기업은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운 반면, 대기업은 미국과의 문제가 있고, 북쪽으로서도 남과 경협하는 것을 두고 내재적인 고민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이=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러나 우리 기업인들이 북쪽의 의지를 확인하는 기회는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안 통하는 것이 문제다. 시간이 좀 걸려야 하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대목에서 문제가 뭐냐면, 남쪽 기업이 마음이 통하는 얘기를 할 북쪽의 상대가 누구인지를 아직 못찾았다는 점이다. 북쪽 공장에 가면 지배인, 기사장이 나와 얘기하는데, 이 사람들은 할당된 생산만 책임지면 된다. 할당된 원자재로 그만큼만 하면 되지 추가 설비, 추가 생산은 이들의 관심이나 비즈니스가 아니다. 또 북쪽의 태도 중에 아쉬운 점은 투자 하려는 사람을 잡겠다는 적극적인 마음 씀씀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 기업인에게는 그동안의 관행이 있어서 북쪽의 특수성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제 나름으로 처방을 내린다면 정부와 기업인, 남북문제 전문가들이 함께 협의하는 과정을 거쳐서 경협이 추진됐으면 좋으리라는 것이다. 이번 평양에 오기 전에 사전 준비 워크숍을 했다. 그 때문에 어느 정도 토론회의 수준이 유지된 것이 아닌가 싶다. 기업인에게만 맡기기 보다 정부 지침과 기업 관점, 전문가들의 전문성이 결합돼서 경협 추진 계획을 만들어 시행착오를 줄이고 경협 통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절대로 피해야 할 일이 경협으로 오히려 서로의 불신이 쌓이는 일이다.

김=이번 방문 기간에 제10차 평양국제상품전람회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이름은 국제전람회지만, 중국 기업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일본과 한국 기업들은 보이지 않았다. 폴란드, 시리아 같은 나라들도 이름만 내건 명목적 수준이었다. 한 나라가 추진하는 개혁개방을 바라보는 외국의 시각은 이처럼 냉엄한 것 아닌가 싶었다.

문=중국기업이 압도적으로 많은 건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 다만 걱정은 중국이 많은 전시장을 차지하고, 또 공장들을 다녀 보면 대만이나 중국 기계들이 주종을 이룬다. 북이 중국의 경제적으로 속국이 되리라고 보지는 않지만, 중국과 대만에 대한 자본재 의존도가 너무 높지 않은가 하는 생각은 든다. 한국정부와 기업들이 생각해볼 부분이다. 전람회의 경우 거의 랴오닝, 산둥, 지린성 쪽 기업들이 판을 쓸어버렸는데 우리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나 무역협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중국 기업들이 많이 나와 있다고 해도 규모가 크지는 않다. 또 하나 북쪽에선 국제라는 말은 우리가 말하는 국제와는 개념이 다른 것 같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수준에 머물러 있는게 북쪽의 현실인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론 경제 수준의 문제로 보인다. 북의 경제수준에서 보면 중국 기계가 맞다. 대만기계는 또 중소기업에 맞다. 대만은 대기업이 없는 나라다. 중소형 설비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 대만이고, 산업수준으로는 중국 기계가 맞는 것이다. 그런 점에선 자연스런 선택이다. 또 중국의 라오닝성 입장에선 북은 완전히 관문이다. 전람회 참가 회사들이 상당수가 랴오닝성과 북한의 접경인 단둥에 있는 회사들이다. 랴오닝성으로서는 의미있는 시장이니 전람회에 많이 참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걸 너무 큰 의미를 두고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한다.

김=좀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현 정세 속에서 남북관계를 보고 싶다. 2·13합의 때만 해도 북-미관계와 핵문제에서 획기적 진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방코델타아시아(BDA)가 여전히 난관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 북-미가 이를 어떻게든 잘 풀어야 하는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또 한국이 조정자로서 어떤 이니셔티브를 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이=2·13합의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게 미-북 사이 직접 대화가 가능하게 된 상황이다. 심지어 비디에이도 미-북이 머리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비디에이 문제 자체가 미-북이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는 중요한 과정이다. 한국전쟁 뒤 처음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북한이 취하기로 한 조처는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 또한 미-북이 머리 맞대고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합의 이행이 안 되는게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비디에이 해결을 위해 이 긴 과정을 거치는 자체가 북쪽이 앞으로 이행해야 할 조처를 좀 더 압박하는 것이라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북간에 해야 할 일들도 지금까지의 3대 경협 틀 속에만 머물러선 안된다. 철도 시험운행은 이 3대경협 사업의 마무리 성격을 띤다. 이제는 비디에이가 마무리되고 핵문제 해결 단계에서 남북간에 새로운 의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3대경협에서 좀 더 나아간 진전된 의제들을 다뤄야 한다.

문=2·13합의는 복합적이다. 베를린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비디에이와 관련해 한 합의는 크게 3가지다. 미국이 비디에이의 북쪽 50개 계좌를 하나로 통합하고, 뱅크오브차이나의 북한계좌에 송금하면, 북은 투명성있게 인도적·교육적 목적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게 되면 30일 이내에 북 핵시설을 폐쇄, 봉인하고, 국제원자력기구 감시단 3명을 부르도록 돼 있다. 지금 기본적으로는 1항은 됐는데 2항이 아직 안됐다. 뱅크오브차이나로의 송금은 이뤄지지 않았고, 비디에이는 처벌한 상태다. 세계 은행들이 바보가 아니니 북한의 돈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기본적으로 미국에 있다. 그러나 북쪽도 문제가 있다. 힐과 김계관 사이 합의는 비공식 합의다. 2·13합의 어디에도 베를린 합의에 대한 언급이 없다. 지금은 비공식 합의가 공식 합의를 볼모로 잡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북쪽도 행동 대 행동을 강조하는 건 이해는 되지만, 전세계가 관심 갖고 있고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네오콘)들이 협상이 깨지기 바라는 상황에서 이렇게 가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미국은 정말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이 만큼 노력하는 것은 아마 처음일 거다. 북쪽도 원칙론만 고집하지 말고 신축적 자세에서 사태를 풀어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판이 깨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김=2·13합의 뒤엔 6자 외무장관회담과 장기적으로 정상회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가능성까지 제기됐는데, 그런 전망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보나?

문=얼마든지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힐도 말했지만, 금년 내에 핵시설 폐쇄와 봉인, 감시단 수용의 1단계와 모든 핵시설, 프로그램의 신고와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라는 2단계까진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핵무기를 검증가능하게 폐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본다. 북이 핵무기를 가졌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확산은 막아야 하고 협상을 통해서 가진 핵무기도 막아야 한다. 우리 입장에선 전쟁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북이 핵포기도 안할 건데 왜 협상하느냐는 일부의 주장은 이해가 안된다. 그렇게 얘기한다면 2·13합의를 할 이유도 없고, 협상에 나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항상 우리는 북이 핵을 폐기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협상에 나가는 것이다.

이=우리가 다 알면서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 북핵문제는 기본적으로 미-북 관계가 정상화돼야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 국제원자력기구(IREA) 등을 내세워서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면 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미-북 양자간 대화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선 미국도 상당히 유연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미국 정부가 좀 더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문=동맹파와 자주파의 입장 차이가 보이는 것 같다. (웃음)

이=미-북관계 풀려는 노력을 미국이 해줘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 핵문제는 해결의 로드맵을 따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장기전망에 대해서 어둡다, 밝다 하긴 어려울지 모르지만, 해결로 나아가도록 북한도 적절한 노력을 해야 한다. 미국도 (부시 행정부)의 남은 2년을 포괄적 접근과 다양한 관계개선 기간으로 활용하면 긍정적일 것이다.

김=남쪽 당국이 어떤 식으로 이니셔티브 취해야 할지, 이런 상황에서 남쪽 정부가 외교 역량을 넓혀갈 수 있는 현명한 방안은 무엇인지 말해줬으면 한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이달말로 예정된 남북장관급회담에선 평화체제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하는데...

문=2·13합의 이후 비디에이와 관련해 가장 안을 많이 낸 게 대한민국 정부다. 베이징과 워싱턴을 왔다갔다 하면서 제일 많이 노력했다. 우리 언론이 그걸 이해 못한다. 가장 처절하게 사태의 중요성을 알고 동분서주하면서 모든 안을 내놓은 게 우리 정부다. 그건 분명 인정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부시 미 대통령이 작년 11월 하노이에서 종전선언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 발언을 한 것에 엄청난 관심을 가져 왔다. 남북정상회담 아닌 4자정상회담 개최설 등은 언론이 앞서가는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현 정부가 생각하는 것은 남북정상회담을 못하더라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보탬이 된다면 그 이상 바람직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 하는 기조로 가는 것이다. 여기서 첫 단추가 비디에이 문제다. 비디에이 문제가 빨리 풀려야 하고 이를 풀면서 5개 실무그룹 회의가 동시에 풀려나가야 한다. 이 실무회의에서 우리가 특히 역할을 할 수 있는게 의장국으로 있는 대북에너지 및 경제 지원, 러시아가 의장국인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실무그룹이다. 여기서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참여정부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것도 결국 북의 현실 인식, 북이 얼마나 전향적으로 나오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우리의 이니셔티브는 이미 확보돼 있다. 그동안은 합의를 만들기 위한 이니셔티브를 행사했다면, 지금은 합의 이행을 위한 이니셔티브를 행사해야 한다. 우리는 무한 책임이 있다. 우리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한-미간 긴밀한 공조와 전략적 대화가 지금 매우 중요하다. 모든 문제에 대해 충분히 협의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행동을 먼저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협의를 먼저 하고 양국 사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이 기본적으로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 남북관계와 관련해서도, 남북간에 합의한 것은 남과 북이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지금 단계에선 경협 합의 사항을 이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공업·지하자원 협력 등으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자는 것이 합의돼 있고, 이런 합의가 이행된다는 점을 국민들과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한다.

평화체제는 지금 군사적 보장 문제가 많이 걸려 있다. 경협의 군사적 보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경협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만큼이나 정부가 관심 갖고 풀어야 한다. 이제는 새로운 의제 설정이 필요하다. 장관급회담이 열리면, 평화의 개념을 뭘로 잡는가가 문제가 될 텐데, 경협이 잘 이뤄지도록 군사 보장을 원활히 취해주는 것이 평화체제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평화체제 문제가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것과 아주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남북간의 현안들을 풀어가는 것이 평화체제를 만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평화체제를 단계나 차원이 다른 문제로 보면 국제적 측면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데, 남북관계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함께 북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합의된 국제적 협의의 틀을 적절하게 조화시키면 평화체제 문제가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재정 장관도 그런 의미에서 다음 장관급회담에선 평화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보다는 지금 하는 남북간의 합의된 일들을 보장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평화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김=다들 북쪽을 여러 차례 방문한 경험들이 있으신데 이번 방문에서 과거와 달라진 점을 느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문=5번 방북했는데, 큰 변화를 느낀다. 이번엔 평양이 그렇게 풍요로와 보일 수 없다. 과거 전기가 다 꺼져 있는데, 지금은 아직 환한 저녁 7시면 아파트에 전기가 다 들어오는 것 봤다.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지 나무들도 신록이 무척 싱그럽게 느껴졌다. 공장을 갔더니 온통 경쟁 경쟁 경쟁이다. 소학교를 방문했을 때도 보니 매주 성적을 순서대로 공개하고 있었고, 비누공장도 사회주의경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경쟁의 기본이 상금, 보너스라고 한다.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강=전력난의 완화나 경쟁 말고도 자동차 대수가 많아진 게 눈에 띄었다. 묘향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제가 탄 버스가 앞 차가 안 비켜주니까, 신경질적으로 비키라고 하던데 1년 반 전 묘향산에 다녀올 때는 어쩌다 군용차를 빼곤 오가는 차가 거의 없었다. 또 아직은 평양에 교통신호등이 없고 필요 없다고 볼 수 있지만, 여기도 언젠가는 중앙아시아 어느 나라처럼 남쪽에 교통신호에 관한 기술 자문을 구할 날이 오지 않겠는가 싶었다.

이=5년만에 평양에 왔다. 매우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남쪽의 경제대표단을 북쪽 당국자들이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토론에 임한 것 자체가 큰 변화다. 대단한 변화다. 지금 여러분 말씀대로 변하고 있다. 또 하나는 변화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장 지배인, 기사장은 물론이고 당국자들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지금 경쟁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경쟁은 사실 속도다. 앞으로 계속 지금처럼 경쟁을 강조한다면 변화의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속도를 기대해도 좋겠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데, 어떻게 그 가속도가 붙을 수 있게끔, 또 부작용, 사고 없이 계속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할 것인가는 우리가 계속 관심 가져야 할 우리의 미래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평양/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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