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합의 직후 부시와 ‘이행조처 연계’ 약속한듯
북한에 대한 쌀 차관 제공 유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이며, 이는 노 대통령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2·13 합의 직후 한 ‘약속’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정부의 외교안보 소식통은 27일 “노 대통령은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비공개로 열린 관련 부처 장관급회의에 참석해 ‘북한이 2·13 합의 초기조처를 이행할 때까지 쌀 차관 제공을 유보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일 열린 장관급회의에서 쌀 차관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자, 이틀 뒤 다시 소집된 회의를 직접 주재해 이런 지침을 내렸다고 전해졌다. 이에 따라 23일 열린 장관급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는 쌀 차관 문제를 따로 논의하지 않았다.
다른 소식통은 “노 대통령은 2·13 합의 직후 부시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6자 회담 합의사항 이행과 남북관계 진전의 속도를 맞춰달라는 부시 대통령의 요청을 양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피비에스>(PBS)와 한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3억달러 규모의 대북한 지원계획이 있으나, 북한이 미국을 포함해 5자와 맺은 합의들을 존중할 때까지 집행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확고히 견지했다”며 “내 친구 노 대통령한테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이번에 북한에 대한 차관 제공을 유보한 쌀 40만t(1억5400만달러 이내)은 운송비(186억원) 등을 포함할 경우 1억7천만달러 남짓 된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도 남북열차 시험운행 하루 전인 지난 16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을 찾아와 쌀 차관 제공에 대해 물었다고 정부 핵심 관계자가 전했다.
노 대통령의 이런 지침은 쌀 차관 제공을 ‘영변 핵시설 폐쇄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의 북한 방문, 핵시설 봉인’ 등 2·13 합의에 규정된 북한의 초기 의무 이행과 연계한 것으로, 남북관계는 물론 6자 회담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이는 정부의 공식 정책노선인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 해결의 병행 발전’ 추진과 달리 ‘북핵 문제 해결 우선론’ 쪽으로 기운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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