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위원장 ‘파격행보’ 줄어…‘예측 가능한 회담’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노 대통령보다 키가 커 보이는 김 위원장은 바지 끝의 접힘과 구두의 모양새로 보아, 알려진 대로 ‘키 높이 신발’을 신은 것으로 보인다. 평양/청와대사진기자단

2000년과 달라진 모습

주요일정 대부분 예정대로…북 일반적 외교관례 접근

‘파격 영접!’ ‘깜짝쇼!’ ‘깜짝 마중!’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동이나 발언을 보도하는 기사 앞에는 으레 ‘예측 불허’와 ‘깜짝’ ‘파격’이란 꾸밈말이 붙는다. 2000년 정상회담 때에 견주면 덜하지만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보도 또한 마찬가지다. 정상회담 첫날 보도를 보면, ‘노 대통령 평양 도착 … 김 위원장 깜짝 영접’ ‘정상회담 북한 파격의 연속’이거나 ‘노 대통령-김 위원장 차분한 첫 만남’이란 설명이다. 김 위원장이 애초 3일 오전 10시 예정된 첫 정상회담보다 30분 일찍 노 대통령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 나타나 회담도 30분 앞당겨졌다. 3일 오후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회담 일정 하루 연장을 요청하자, ‘예측불허’와 ‘깜짝’이란 인상이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의 이틀 동안 진행 경과를 살펴 보면, ‘예측 가능성 높아진 회담 진행’이란 평가를 할 수 있다. 정부 당국이 2000년 정상회담 전례를 고려해 잡았던 이번 정상회담 이틀 동안의 주요 일정은 3대 혁명전시관 참관만 빼면 대부분 예정대로 진행됐다.

첫날 김정일 위원장 직접 영접 가능성도 북한이 확인을 해주지 않았지만, 정부 당국은 어느 정도 김정일 위원장의 영접을 예상하고 있었다. 정상회담 선발대가 북쪽과의 환영행사 실무협의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환영식에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김정일 위원장의 신변안전과 경호상 필요 때문에 김정일 위원장의 영접 가능성을 마지막 순간까지 확인하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나라들이 최고지도자의 동선을 비밀로 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정상회담 때 “김 대통령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농담했다. 2000년 6월 정상회담 전까지만 해도 외부 세계는 김 위원장을 수수께끼 인물로 묘사해 왔다. 김 위원장은 2000년 6월 예의 바르고 거침없는 뜻밖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2000년 이후 남북관계가 진전됐고 김정일 위원장도 꾸준한 외교 행보를 보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10월23~25일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했다. 납치문제가 걸려 있지만, 일본과는 2002년과 2004년 두 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은 2000년 이후 네 차례 중국을, 2001년에는 러시아를 방문했다. 서방과 활발한 외교활동도 벌여 2000년 이후 이탈리아·오스트레일리아·필리핀·영국·캐나다·독일 등과 수교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남쪽은 2000년 정상회담 전례에 비춰 회담 계획을 잡고, 북쪽과 협의했다. 정상회담 이틀째 일부 변동이 있었지만 북한의 보안 중시 특성을 고려한다면, 이번 정상회담은 나름대로 일반적 외교관례에 접근해 가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권혁철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