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일찍 회담장 찾고 ‘일정 연장’ 전격 요청
2000년과 달라진 모습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예측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회담 일정 연기 제안과 철회 등 돌출과 반전은 계속됐다.
정부 당국은 2000년 정상회담 전례를 고려해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일정을 잡았다. 정상회담 둘쨋날 오전까지는 3대 혁명전시관 참관만 빼면 대부분 일정이 예정대로 굴러갔다.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 때 폐쇄와 은둔의 나라가 아니라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있음을 여러모로 과시했다. 학생들이 인민대학습당에서는 어학실습 시설을 갖춘 강의실에서 헤드셋을 쓰고 영어 듣기와 쓰기를 공부했다. 특별수행원들이 참관한 김책공대 전자도서관에서는 컴퓨터 모니터의 동화상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대학생의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첫날 김정일 위원장의 환영식장 등장을 언론은 ‘깜짝 영접’이라고 보도했지만, 정부 당국은 김 위원장의 영접을 예상하고 있었다. 정상회담 선발대가 북쪽과의 환영행사 실무협의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환영식에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나라들이 최고지도자의 동선을 비밀로 하기 때문에 김 위원장 직접 영접을 사전에 알리지 않은 북한의 태도를 크게 탓하기 어렵다.
이때까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예측 가능한 외교관례에 접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관련 기사 앞에는 으레 붙던 ‘예측 불허’와 ‘깜짝’ ‘파격’이란 꾸밈말도 떨어져 나갈 때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애초 3일 오전 10시 예정된 첫 정상회담보다 30분 일찍 노 대통령 숙소인 백화원영빈관에 나타났다. 회담도 30분 앞당겨졌다. 이를 두고 ‘돌출’이란 지적에 대해 김정섭 청와대 부대변인은 “(애초 예정된 회담 시간은) 첫 번째 정상회담의 전례에 비추면 그렇게 진행될 수 있겠다고 한 것이지 30분 차이가 (있다고 해서) 변경되었거나 어떤 사정이 있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회담 일정 하루 연장을 전격 요청했다. 이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서울의 정부 관계자들은 김 위원장의 파격 제안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한동안 술렁였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회담하다 갑자기 일정을 바꾸라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일정 연장은 없던 일로 됐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예측 불허’란 인상이 굳어졌다. 2000년 6월 정상회담 전까지만 해도 외부 세계는 김 위원장을 수수께끼 인물로 묘사해 왔다. 김 위원장은 2000년 6월 예의 바르고 거침없는 뜻밖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정상회담 때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농담했다. 2007년 정상회담 때 북한은 7년 전에 견줘 한층 예측 가능해졌지만, 파격과 돌출이란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내지는 못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그런데 이날 오후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회담 일정 하루 연장을 전격 요청했다. 이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서울의 정부 관계자들은 김 위원장의 파격 제안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한동안 술렁였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회담하다 갑자기 일정을 바꾸라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일정 연장은 없던 일로 됐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예측 불허’란 인상이 굳어졌다. 2000년 6월 정상회담 전까지만 해도 외부 세계는 김 위원장을 수수께끼 인물로 묘사해 왔다. 김 위원장은 2000년 6월 예의 바르고 거침없는 뜻밖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정상회담 때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농담했다. 2007년 정상회담 때 북한은 7년 전에 견줘 한층 예측 가능해졌지만, 파격과 돌출이란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내지는 못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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