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저녁 제1차 남북 총리회담 총리주재 환영만찬이 열린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 그랜드홀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만찬사를 한 뒤 북측 수석대표인 김영일 내각총리(왼쪽에서 두번째) 등과 건배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 내각총리, 한 총리, 권호웅 내각참사. 사진공동취재단
회담 첫날 표정
남북 총리 화기애애…만찬장 재계인사 참석
남북 총리 화기애애…만찬장 재계인사 참석
15년 만에 이뤄진 남북 총리의 만남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여느 회담과 달리 신경전이나 기싸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남북 당국 간 회담에선 처음으로 회의 도중 파워포인트 등 시각자료를 활용한 설명회가 이뤄지며 매우 실무적으로 진행됐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김영일 북한 내각총리의 첫 대면은 14일 낮 12시10분께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 로비에서 이뤄졌다. 로비에서 기다리던 한 총리는 황갈색의 두터운 겨울 외투를 입고 호텔에 도착한 김 총리한테, 밝은 표정으로 “환영합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김 총리도 “반갑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둘은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으며 사진기자들 앞에 섰다.
접견실로 자리를 옮긴 두 총리는 5분여 동안 가벼운 환담을 나눴다. 한 총리는 “(회담 장소에서) 조금만 더 가면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인데 실학의 거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가 있다. 항상 실사구시로 모든 일을 구체적으로 효과 있는 방향으로 하자는 의미다”며, 이번 회담을 ‘실사구시’적으로 풀어가자는 뜻을 강조했다.
김 총리는 “비행장, 호텔에서 뜨거운 열기를 보니 회담이 온화한 분위기에서 잘될 것 같다”며 “연출을 잘 한번 해야겠다 하는 기대가 있다”고 화답했다. 김 총리는 특히 “우리 (김정일) 장군님께서 모든 일이 잘 진행되도록 길을 열어줬으니까 잘 해보자”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건장한 체구로 시종 밝은 표정과 우렁찬 목소리로 환담을 나눴다.
오후 전체회의 들머리에도 김 총리는 “우리나라 속담에 시작이 절반이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힘들다, 만리길도 첫걸음부터 시작된다, 첫걸음을 잘 떼면 마지막도 잘 풀린다는 말이 있다”며 “아주 회담이 잘될 것 같은 예감이 앞선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며 구체적 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체회의 말미에는 남쪽이 구상하고 있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기본 구상과 추진구도에 대해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10여분 동안 별도 설명이 진행됐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남북 간 회담에서 파워포인트를 이용한 것은 처음으로 상호간의 이해를 돕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한 총리 주재로 열린 만찬행사는 남북 관계자들이 한명씩 섞어 앉아 와인과 문배주로 서로 건배를 나누며 덕담을 건넸고, 두 총리는 만찬이 끝난 뒤 서로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만찬에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경제인들도 참석했다. 북쪽 대표단은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미군기지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참관한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북 대표단 ‘실무 전문관료’ 포진 대표단 면면 살펴보니 김영일 총리 해운전문가…박호영 부상은 환경 전문
권호웅 차석·최승철 실장 등 ‘실세 일꾼’ 출동 주목 14일 개막한 남북 총리회담은 어떻게 진행될까? 회담 대표단 면면에서 회담 성격을 가늠해볼 수 있다. 1990년 열렸던 1차 남북고위급 회담과 비교해보면 더 뚜렷해진다. 우선 눈에 띄는 건 이번 회담 북쪽 대표단의 실무적 면면이다. 북쪽 대표단장인 김영일 내각 총리부터 그렇다. 항해기사 자격을 가진 해운전문가다. 우리 옛 교통부에 해당하는 육해운부(현 육해운성) 말단 직원으로 출발해 총리까지 올랐다. 90년 회담 때 단장인 연형묵 정무원 총리가 일찌감치 권력 핵심인 노동당의 요직을 거쳤던 것과는 대조된다. 김 내각 총리는 육해운상 재직 때인 2005년 남포항에 수만톤급 선박 여러 척을 동시에 수리할 수 있는 령남배수리공장과 대형컨테이너선을 댈 수 있는 부두를 완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치하를 받기도 했다. 이번 회담 주요 의제인 조선협력 문제에서 구체적인 결과를 기대하게끔 하는 대목이다. 박호영 국토환경보호성 부상도 환경보호 분야의 전문관료 출신이다. 2000년 12월과 2001년 2월 국장급으로 남북경제협력추진위와 임진강 수해방지실무협의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차선모 육해운성 참모장과 박정성 철도성 국장 등도 해운과 철도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뤄온 관료들이다. 둘 다 각종 남북 경협 회담이나 토론회 등에 자주 얼굴을 비쳐왔다. 참모장과 국장 직함으로 회담 대표가 된 것은 그만큼 이들의 전문성을 높이 샀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박정민 보건성 국장도 이름을 올렸다. 남북간 협의가 경제협력 분야에 집중될 것이라는 점은 대표단 구성에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이번엔 남북 모두 군사 당국자가 대표단에서 빠졌다. 90년엔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북쪽 차석 대표로 참석했다. 김영철 인민무력부 부국장도 대표단에 포함됐다. 남쪽에서도 정호근 합참의장이 대표단 서열 3위로 참석했고, 군 출신의 임동원 외교안보연구원장도 명단에 들었다. 이번에 군사 당국자가 빠진 건 북쪽의 권력 구도가 바뀐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98년 인민무력부가 국방위원회 직속으로 편제되면서 군부 위상이 강화된 바 있다. 남북관계 ‘실세 일꾼’들이 대거 출동한 점도 주목된다. 북쪽에선 장관급회담 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가 차석으로 공식대표단에 명함을 올렸다. ‘떠오르는 실세’로 알려진 최승철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도 상황실장으로 참여했다. 원동연 통전부 실장, 리현 참사 등 핵심 ‘대남 일꾼’들도 지원단에 포함됐다. 남쪽에선 대북 전문가인 서훈 국가정보원 3차장이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조명균 청와대 안보정책조정비서관과 고경빈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도 막후 조율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개성공단 3통, 문산~봉동 철도 운행 기대
서해평화협력지대, 협의체 통한 논의로 가닥 잡힐듯 의제별 이행 전망
‘즉시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것은 구체적 이행 일정에 합의하고, 중장기 과제는 이행 구도를 잡는 데 주력한다.’
14일 시작한 제1차 남북 총리회담에 임하는 남과 북의 기본 협상 자세다. 남북은 이달 초순 세 차례 총리회담 예비접촉 과정에서 개성공단 활성화 등 일부 의제는 꽤 의견 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전체회의에서 남북은 ‘2007 정상선언’의 핵심인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문제를 논의할 별도 기구 설치에 공감했다. 전체회의 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군사적 보장이 중요한데, (27~29일 열릴) 남북 국방장관 회담의 목적이 정상선언 이행이므로 무리없이 군사적 보장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총리회담에서 합의를 통해 즉시 실천이 가능한 분야로는 개성공단 활성화, (경의선)문산~봉동 (구간) 철도화물 수송,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이 꼽힌다.
이재정 장관은 “개성공단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는 기업 투자의 중요한 요건이고 개성공단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여러 공업지구 개발에도 연관된 일”이라며 “기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통행과 관련해 여러가지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현재 개성공단 입주기업 직원들이 개성공단을 출입할 때마다 날짜와 시간대를 특정해 사흘 전에 통보해야 하는데, 입주 업체들은 개성공단 상주 인원과 차량의 상시 통행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문산~봉동 철도화물 수송이 실현되면 물류비용이 줄고 대량수송이 가능해져 개성공단 활성화에 큰 몫을 하게 된다. 이 장관은 “이른 시일 안 열차가 운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해, 이르면 올해 안 화물열차 운행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3월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완공을 계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 확대·심화 방안도 논의됐다. 남쪽은 면회소가 들어서면 고령자 생사 확인과 매달 이산가족 상봉을 하고 매주 소규모 재상봉을 병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안변과 남포에 건설하기로 한 조선협력단지는 남북 산업협력의 성공적 모델이자 상호 보완적 분업관계로 꼽힌다. 일감이 넘치지만 새 조선소 지을 곳을 못 구해 고심하던 남쪽 조선업계가 큰 관심을 쏟고 있고, 북쪽 김영일 총리도 첫날 전체회의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자”고 말했다. 조선협력은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측면 지원을 하는 ‘역할 분담’ 방식의 사업 추진 틀을 짜는 쪽으로 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날 조선협력과 관련해 남쪽 기업의 투자·생산활동을 보장하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을 북쪽에 요구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한 총리 주재로 열린 만찬행사는 남북 관계자들이 한명씩 섞어 앉아 와인과 문배주로 서로 건배를 나누며 덕담을 건넸고, 두 총리는 만찬이 끝난 뒤 서로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만찬에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경제인들도 참석했다. 북쪽 대표단은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미군기지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참관한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북 대표단 ‘실무 전문관료’ 포진 대표단 면면 살펴보니 김영일 총리 해운전문가…박호영 부상은 환경 전문
권호웅 차석·최승철 실장 등 ‘실세 일꾼’ 출동 주목 14일 개막한 남북 총리회담은 어떻게 진행될까? 회담 대표단 면면에서 회담 성격을 가늠해볼 수 있다. 1990년 열렸던 1차 남북고위급 회담과 비교해보면 더 뚜렷해진다. 우선 눈에 띄는 건 이번 회담 북쪽 대표단의 실무적 면면이다. 북쪽 대표단장인 김영일 내각 총리부터 그렇다. 항해기사 자격을 가진 해운전문가다. 우리 옛 교통부에 해당하는 육해운부(현 육해운성) 말단 직원으로 출발해 총리까지 올랐다. 90년 회담 때 단장인 연형묵 정무원 총리가 일찌감치 권력 핵심인 노동당의 요직을 거쳤던 것과는 대조된다. 김 내각 총리는 육해운상 재직 때인 2005년 남포항에 수만톤급 선박 여러 척을 동시에 수리할 수 있는 령남배수리공장과 대형컨테이너선을 댈 수 있는 부두를 완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치하를 받기도 했다. 이번 회담 주요 의제인 조선협력 문제에서 구체적인 결과를 기대하게끔 하는 대목이다. 박호영 국토환경보호성 부상도 환경보호 분야의 전문관료 출신이다. 2000년 12월과 2001년 2월 국장급으로 남북경제협력추진위와 임진강 수해방지실무협의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차선모 육해운성 참모장과 박정성 철도성 국장 등도 해운과 철도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뤄온 관료들이다. 둘 다 각종 남북 경협 회담이나 토론회 등에 자주 얼굴을 비쳐왔다. 참모장과 국장 직함으로 회담 대표가 된 것은 그만큼 이들의 전문성을 높이 샀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박정민 보건성 국장도 이름을 올렸다. 남북간 협의가 경제협력 분야에 집중될 것이라는 점은 대표단 구성에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이번엔 남북 모두 군사 당국자가 대표단에서 빠졌다. 90년엔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북쪽 차석 대표로 참석했다. 김영철 인민무력부 부국장도 대표단에 포함됐다. 남쪽에서도 정호근 합참의장이 대표단 서열 3위로 참석했고, 군 출신의 임동원 외교안보연구원장도 명단에 들었다. 이번에 군사 당국자가 빠진 건 북쪽의 권력 구도가 바뀐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98년 인민무력부가 국방위원회 직속으로 편제되면서 군부 위상이 강화된 바 있다. 남북관계 ‘실세 일꾼’들이 대거 출동한 점도 주목된다. 북쪽에선 장관급회담 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가 차석으로 공식대표단에 명함을 올렸다. ‘떠오르는 실세’로 알려진 최승철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도 상황실장으로 참여했다. 원동연 통전부 실장, 리현 참사 등 핵심 ‘대남 일꾼’들도 지원단에 포함됐다. 남쪽에선 대북 전문가인 서훈 국가정보원 3차장이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조명균 청와대 안보정책조정비서관과 고경빈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도 막후 조율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개성공단 3통, 문산~봉동 철도 운행 기대
서해평화협력지대, 협의체 통한 논의로 가닥 잡힐듯 의제별 이행 전망
고려항공 편으로 14일 오전 김포공항에 도착한 남북총리회담 북쪽 대표단이 항공기 창문을 통해 밖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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