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알고도 뒤늦게 공개 파문
북한에 지원된 쌀 일부가 최전방 북한군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있다는 2년 전 첩보가 뒤늦게 공개됐다. ‘남북협력기금의 투명성 강화’를 국정 과제로 발표한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둔 미묘한 시점이어서, 인도적인 대북 쌀 지원에도 영향을 줄지 주목되고 있다.
국방부 당국자는 14일 “2006년 이래 강원도 인제 비무장지대 근처 북한군 부대에서 ‘대한민국’ 글자와 적십자 표시가 찍힌 쌀 400마대가 일부 쌓여 있거나, 마대가 진지 구축에 쓰이는 모습이 10여 차례 포착됐다”고 확인했다. 앞서 한 아침 신문은 이날 정부 당국자 말을 인용해 이런 내용을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2006년 말쯤 이런 사실을 통일부에 통보했다”며 “이에 따라 통일부는 지난해 4월 식량차관 합의서 체결 때 분배 투명성 확보조항을 넣고 현지 식량분배 모니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첩보는 2006년에 파악된 것이며, 이미 처리된 사안인데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에 공개됐다는 것이다.
국방부 쪽은 2006년 이전부터 이 첩보가 파악됐으며, 쌀 지원은 통일부 소관이어서 정보를 통보했고, 군사회담에서 거론하는 등 문제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국방부 쪽에서는 쌀 전용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 표시가 있는 쌀포대가 북한 군부대에 돌아다니는 효과를 참작했는데, 뒤늦게 공개된 배경에 의구심을 보이는 분위기도 있다.
통일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앞으로 분배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모니터링 대상·장소를 확대하고, 북한 지역에 상주해 쌀 분배 현장 점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문제가 남북관계에서 쟁점화될 가능성이 제기된 까닭이다. 그동안 대북 지원 쌀의 군량미 전용 주장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정황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정부는 2000년부터 북한에 차관 형식으로 쌀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제공한 쌀 40만t은 10년 거치 30년 상환 조건에 이자율이 연 1%에 불과하지만 형식은 차관이다. 이 때문에 남북협상에서 차관형식인 대북 지원 쌀의 사용처를 제한하기 어렵다. 이용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원칙적으로 차관은 받는 쪽이 자신들 필요에 따라 쓸 수 있기에 사용처의 투명성 검증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식량기구 요원 10명이 북한에 상주하고 있지만, 북한 당국은 이들이 주민을 직접 접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말을 구사할 수 있는 요원의 상주는 불허하고 있다.
이 사무총장은 “분배 투명성 보장을 분명하게 하려면 이 기회에 무상 지원인지 차관인지 성격이 모호한 대북 쌀 지원의 성격을 분명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