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와병설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만이 내릴 수 있는 북핵 관련 외교적 결정들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월 불능화 중단 통보(14일)와 대외 공표(26일)에 이어, 9월에도 원상복구 선언(3일), 원상복구 착수 공표(19일), 재처리시설 봉인 해제 요구(22일)와 감시카메라 철거 및 재처리시설 가동 선언(24일) 등의 압박 카드가 차례로 공개됐다. 28일엔 전격적으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평양 방문 계획이 발표됐다.
상대적으로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은 잦아들고 있다. 일부 언론은 불능화 중단 등 북한의 강경 태도가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을 틈탄 군부의 ‘농단’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어림없다’고 본다. 정부의 한 관계자도 “관례에 비춰볼 때, 최근의 결정들은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할 수도, 군부가 할 수도 없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일련의 결정들은 김 위원장의 전략적 판단 능력에 별 문제가 없음을 말해주는 방증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10일 국회 정보위에서 김 위원장이 8월14일 이후 뇌혈관 질환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호전된 상태라고 밝혔다. 북한은 불능화 중단을 8월14일 미국에 통보하고 26일 대외 공표했다. 김 위원장이 14일 쓰러졌다고 해도 늦어도 26일엔 이미 자신의 최초 결정을 추인할 수 있는 상태가 됐음을 말해준다. ‘통치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국정원의 국회 보고도 이런 일련의 결정이 이뤄지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건강문제가 애초부터 판단능력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경미한 수준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부축을 하면 일어설 수 있다’거나 ‘양치질을 할 수 있다’는 등 마치 곁에서 들여다본 듯한 국정원 첩보의 신뢰성에 대해선 정부 안에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한 군 관계자는 “국정원이 그 정도의 독자적 채널을 확보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군 정보기관에서도 믿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 정부 관계자도 “극단적으로는, 북한이 모호성을 유지하고 북핵 협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와병설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현재 분명한 건 김 위원장이 주요 문제를 결정하고 있다는 점 뿐”이라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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