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나라 주장 엇갈려…서로 비난 자제 ‘구두양해’ 추측
북한과 미국이 북핵 검증 방안의 하나로 시료채취(샘플링)를 할 수 있느냐를 두고 공개적으로 거듭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평양에서 이뤄진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사이의 ‘검증 의정서’ 합의 내용에 궁금증이 이는 까닭이다.
북쪽은 12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미가 ‘서면합의’한 검증 방안엔 시료채취가 들어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로버트 우드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북쪽의 담화 직후에 이뤄진 정례브리핑에서 “전문가들이 시료를 채취하고 이를 테스트하려고 북한 밖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에 기본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지난달 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며 공개한 ‘검증에 관한 북-미간 이해’ 문건에서 밝힌 대로 시료채취가 검증방안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상황에서 북-미가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쪽은 담화에서 “일부 세력들이 조미평양합의는 부족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비난했을 뿐, 미 행정부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았다. 우드 부대변인도 대북 비난·유감 표명은 커녕 오히려 미국이 중유 5만t을 지난 주 두 대의 선박에 나눠 선적했으며, 이달말과 다음달 초 북한에 도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북-미간 이런 묘한 상황 전개엔 지난달 평양 협의를 통해 서면합의 외에 문서로 정리하지 않은 구두 양해사항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외교 소식통은 13일 전했다. 서면합의 말고도 시료채취와 관련한 북-미간 별도 ‘양해’가 있었다는 뜻이다. 외교안보분야 전직 고위 관리는 “외교 협상에선 모든 쟁점을 명확하게 규정하려고 하면 합의 자체가 불가능해 모호성을 남겨둔 채 서로 양해하는 경우도 있다”며 “김계관 부상과 힐 차관보는 일단 시료채취와 관련해 서로 편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두기로 양해하고, 앞으로 6자 회담 진전 과정에서 그 모호성을 메워나가는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이제훈 기자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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