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호주서 밝혀…대북정책 변화 촉각
북한 체제의 안정이 남북 협력에 도움이 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4일 발언은 그동안 이 대통령의 북한 관련 발언 가운데 가장 유화적이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고비마다 북한을 자극하는 언급을 해왔다. 지난해 11월 방미 기자간담회에선 ‘자유민주주의 체제 통일이 궁극 목표’라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로 북한 급변사태론과 붕괴론이 거론되던 시점에서 ‘대북 흡수통일’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렀다.
지난달 12일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관계자들과의 만찬에선 “하루 세끼 밥 먹는 것을 걱정하는 사회주의라면 그런 사회주의는 안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공식적 언급이었지만, 북한 체제를 부정하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때마다 북한은 “동족대결 광증이 배긴 이명박 패당과는 북남 관계를 논할 여지가 없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남한 정부가 여러 차례 조건 없는 남북 대화 방침을 밝혔지만, 북한은 남쪽 최고 지도자의 ‘대결적 발언’에 비춰 남쪽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며 응하지 않았다.
반면, 이번 발언은 남쪽 내 북한 붕괴론에 일정한 선을 그은 것이어서, 북한의 대남 의구심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20일 방한 때 “우리 목표는 현재 북한의 리더십을 어떻게 6자 회담의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냐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이날 발언이 “남북간 합의사항을 존중할 것”이라고 밝힌 지난 3·1절 기념사에 이어 나온 점도 눈길을 끈다. 이 대통령은 이전까진 ‘남북간 합의정신을 존중한다’고 해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미묘한 차이를 둔 건 아니다”라고 했지만,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존중한다고 밝힌) 남북 합의엔 6·15와 10·4선언도 포함된다”며 “과거 ‘합의 정신 존중’과 뉘앙스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두 선언에 대한 정부 태도가 한걸음 나아갔음을 내비친 것이다. 다만, 정부가 이런 ‘말’의 차이를 이후 실제 대북정책 추진과정에서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는 여전히 공백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또 6자 회담의 영구화를 포함한 동북아 다자안보협의체제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이 역시 그동안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주로 강조해온 한국 정부 태도에 비춰 진전된 견해 표명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