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진(왼쪽)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북미사일 군사대응 반대” 이대통령 발언 배경
미, 북과 ‘대화모드’로…중·러도 대북제재 반대
‘대북 강경 기조’ 고수땐 운신폭 좁아질 가능성도
미, 북과 ‘대화모드’로…중·러도 대북제재 반대
‘대북 강경 기조’ 고수땐 운신폭 좁아질 가능성도
이명박 대통령이 <파이낸셜 타임스>와 한 인터뷰 내용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이후 정부 대응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수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우선 이 대통령은 일본의 요격 방침과 관련한 질문에 “일본 자국민 안전을 위한 것이므로 반대할 수는 없다”면서도 군사적 대응에는 반대한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한국과 일본이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에 가장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측과 달랐다. 갈등의 골이 깊게 팬 최근의 남북 당국 관계를 고려하면 나름대로 의미 있는 ‘(대북)메시지’다.
이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강력한 대북 제재’를 끌어내기 힘든 지금의 국제 정세를 고려한 성격이 짙다. 유엔 안보리에서 비토권을 지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에 사실상 반대하고 있어 실효성 있는 제재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북한의 로켓 발사에 반대한다면서도 북한과 대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양동 작전’을 펼치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29일(현지 시각) <폭스 뉴스>에 나와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실효성도 없는 대북 강경 대응 기조를 고수하다간 앞으로 정세 변화 과정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우려가 있다. 일정한 냉각기를 거친 뒤 이뤄질 6자 회담 등 대화 국면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이 대통령의 발언은 그동안 한-미 조율의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앞으로 이어질 대화 국면을 대비한 상황 관리 차원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으로선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 고조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한국은 독자적으로 북한 로켓에 대해 군사적으로 대응할 현실적인 수단도 없다. 북한 로켓 발사장을 F-15 전투기로 선제공격할 수는 있으나, 이는 전면전을 의미하므로 선택 가능한 수단이 아니다. 또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에 장착된 SM-2 미사일은 항공기 방어용이라 탄도탄 요격은 불가능하다.
보수 진영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개성공단 폐쇄론’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은 “개성공단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 등이 비슷한 발언을 하기는 했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 쐐기를 박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들을 적극적인 대북 유화 표현이라거나 대북정책 기조의 변화 시사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청와대 관계자는 30일 “경협을 일방적으로 악화시킬 의도는 없지만, 북한이 계속 이런 식이면 경협을 확대할 생각도 없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게다가 정부는 남북 무력 충돌의 불씨가 될 수 있는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측면에서 보면, 이 대통령의 발언은 ‘인공위성’ 발사 이후에도 위기 관리 차원에서 최소한의 대화와 교류를 이어가겠다는 그동안의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용인 황준범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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