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자금 들어 불가능
미국에 ‘협상목록’ 밝힌 것
미국에 ‘협상목록’ 밝힌 것
북한 외무성 성명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자체의 경수로 발전소 건설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대목이다. 그동안 북한은 경수로형 원자력 발전소를 지을 여력이 없어, 북-미 협상과 6자 회담 등에서 핵프로그램 포기에 대한 경제적 보상의 하나로 이를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경수로를 짓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규모의 자본이 드는데다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해야 하는 등 난관이 많아 북한이 ‘자체적으로’ 경수로를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사정 탓에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과 포괄 협상 때 내놓을 ‘협상 목록’을 밝힌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한 외교 전문가는 14일 “외무성 성명은 핵과 장거리 로켓(미사일), 경수로 등 핵심적인 의제들을 모두 언급하고 있다”며 “경수로 역시 북-미간 포괄적 고위급 회담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북한의 경수로에 대한 관심은 역사가 깊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함경북도 신포에서 이뤄지던 경수로 건설공사가 2002년 10월 제2차 북핵위기 발발 이후 중단됐지만, 북쪽은 2005년 4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채택된 9·19 공동성명에 경수로 관련 내용을 기어이 포함시켰다.
9·19 공동성명엔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계획을 포기하는 대가로 “여타 당사국들은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에 동의했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지난 2월 6자 회담 의장이기도 한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평양에 갔을 때에도 북쪽은 ‘경수로를 지어 준다면 포괄적인 핵검증을 받겠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 등은 ‘경수로 가동으로도 무기급 핵물질을 얻을 수 있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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