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I 전면참여 철회” 한국진보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정부의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방침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PSI 전면참여 혼선
‘힘센 부처’ 외교부 숙원사업…수단 아닌 목적으로 전락
참여명분 바꿔가며 밀어붙이기…“외교안보 전략 부재”
‘힘센 부처’ 외교부 숙원사업…수단 아닌 목적으로 전락
참여명분 바꿔가며 밀어붙이기…“외교안보 전략 부재”
통일외교안보 정책이 출렁이고 있다. 정부는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발표 시기를 두 차례나 연기했다. 외교통상부의 독주 및 이를 견제할 의사결정 구조도 없고, 정부 차원의 ‘정리된’ 통일외교안보 전략도 없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외교부는 이번 피에스아이 전면 참여 논의를 사실상 주도해 왔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대량파괴무기) 비확산 문제가 부각되니 피에스아이 전면 참여 문제를 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 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외교부는 공식·비공식 브리핑 등을 통해 피에스아이 참여 방침 ‘굳히기’ 전략을 펴나갔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는 말바꾸기를 거듭했다. 외교부 당국자들은 애초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제재 차원에서 피에스아이 전면 참여를 검토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북한이 남쪽의 피에스아이 전면 참여를 ‘선전포고’로 간주해 “즉시 단호한 대응조처를 취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남북간의 무력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안팎의 우려가 높아지자 외교부는 ‘명분’을 바꿨다. 피에스아이 전면 참여는 북한을 겨냥한 게 아니어서 남북관계에 끼칠 악영향은 없을 것이고, 국제적 협의체에 참여해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코리아’의 위상을 높이려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러다 보니 외교부가 ‘숙원 사업’인 피에스아이 전면 참여를 위해 그 자체를 목적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왔다. 실제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사적인 자리에서 “이번에 피에스아이에 참여하지 못하면 100년 지나도 못 들어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외교부가 주장하는 피에스아이 참여 명분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피에스아이는 바다를 접하고 있는 북한, 시리아, 이란 등 세 나라를 겨냥한 것이라 이들 나라와 인접한 한국과 중국은 군사적 충돌 가능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외교부가 피에스아이 참여를 국제적 기준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이런 지정학적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피에스아이의 핵심인 ‘차단’(interdiction) 원칙은 선제공격의 성격을 지녀 국제규범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전면 참여를 선언할 경우 그 핵심은 ‘차단’ 원칙의 승인과 이 원칙의 준수에 있다. 참여연대도 성명을 내어 “갈등만 초래할 피에스아이 참여를 고려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대량파괴무기 개발 동기를 포착해 문제를 해결하는 예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힘센’ 부처인 외교부의 독주를 견제할 만한 시스템이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난 정부 때와 달리 외교부 수장인 유명환 장관이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통일부는 이명박 정부 들어 조직이 급격히 축소되고 ‘충성심’에 대한 의혹에 시달리며 제 목소리를 못내고 있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미국에서는 백악관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부처 간 회의를 주재한다”며 “청와대에 장관급 외교안보 사령탑이 없어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 외교안보수석은 차관급이라 조율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다 보니, 골치 아픈 문제인 동시에 주변 강대국을 상대할 때 소중한 외교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는 남북관계 전략을 담아내기 쉽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직 고위 당국자는 “앞으로 북-미 관계가 해빙 국면으로 넘어가면 피에스아이는 남북관계 복원의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당장 북한에 대한 감정적 대응보다는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전략적 혜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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