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시기를 놓고 논란이 거듭됐던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피에스아이) 전면 참여가 21일 남북 개성 접촉 이후 ‘유보’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날 낮까지도 청와대와 정부 안에는 ‘조만간 전면 참여’ 주장부터 ‘잠정 유보’, ‘무기한 연기’ 등 다양한 의견과 전망이 엇갈렸다.
그러나 이날 밤 개성 접촉 결과를 실시간으로 전달받으며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린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당분간 유보한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회의 끝 무렵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보고를 받고 정해진 방침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오늘 접촉에서 개성공단과 관련해 ‘협상을 하자’고 제안했으니 피에스아이 전면 참여 문제는 대화를 하면서 판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일단 북한이 이날 요구한 ‘개성공단 계약사항 전면 재검토’를 놓고 북한과 대화의 길이 트인 만큼, 북한을 자극해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피에스아이 전면 참여 발표를 미루겠다는 의미다. 피에스아이 전면 참여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외교통상부도 피에스아이 연기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어차피 남북관계라는 변수가 등장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청와대와 정부 안에서는 피에스아이 전면 참여 발표를 ‘잠정 유보’하는 것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사실상 무기 연기’로 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이 ‘유지’ 방침을 분명히 밝힌 개성공단을 대화의 고리로 걸고 나왔고, ‘대화’를 강조해 온 이명박 정부도 이를 북한과의 관계 개선 기회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가 “북한이 대화를 제안했다는 점에서 개성 접촉 결과가 예상보다 나쁘지 않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 말고도 청와대 정무 라인 등에서도 향후 남북관계 복원의 불가피성을 거론하며 사실상 무기 연기하는 게 낫지 않으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북쪽이 지금은 남쪽 정부에 강경하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북이나 남이나 남북관계 복원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수요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외교부 등 일각에서는 참여 발표 시기를 연기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해 왔다. 명분 측면에서 이들은 “북한을 겨냥한 게 아니어서 남북관계에 끼칠 악영향은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개성공단에 사실상 장기 억류 상태인 현대아산 ㅇ씨 문제라는 돌출 변수와 북쪽의 갑작스런 접촉 제의 등이 있어 잠시 뒤로 미뤘을 뿐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북한이 앞으로 협상에서 강경한 태도를 일방적으로 고수할 경우, 이런 주장이 다시 힘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
그 경우 피에스아이 참여 발표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다시 한번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 영역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용인 황준범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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