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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2000년 “전쟁위협 없다” 2009년 “사실상 전쟁상태”

등록 2009-06-15 07:53수정 2009-06-15 09:09

6·15공동선언 9돌
이산상봉·금강산관광·민간방북 중단 상태
MB 정부 6·15선언 무시·북 반발이 상승작용
2000년 6월15일 한반도엔 화해와 평화의 희망이 강물처럼 넘실댔다. 남과 북의 두 정상이 두 손을 맞잡고 50년 분단과 냉전에 막혔던 물줄기를 트는 대장정에 합의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6·15 공동선언을 탄생시킨 남북정상회담 직후 “더 이상 한반도에 전쟁위협은 없다”고 선언했다.

9년이 흐른 지금 남북관계는 거칠게 역류하고 있다. ‘정전협정 효력상실과 사실상 전쟁상태 돌입’ ‘북한군 타격시 공세적 대응타격’ 같은 극한의 대결적 용어들이 칼춤을 추고 있다. 냉전의 재현을 넘어 또 한차례 공멸의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무력충돌마저 우려되는 위태로운 국면이다.

6·15 공동선언 이후 어렵사리 쌓아온 남북관계의 버팀목들도 하나 둘 역류에 휩쓸리고 있다. 6·15 선언을 여는 단초가 된 금강산관광 사업은 지난해 7월 중단된 뒤 재개 기약이 없다. 이산가족 상봉은 어느덧 중단 1년5개월째다. 지난달 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 뒤론 개성공단과 금강산 운영 인력을 뺀 남쪽 인원의 방북이 사실상 전면 중단됐다.

6·15 선언의 옥동자로 태어난 개성공단도 죽느냐, 사느냐의 일대 기로에 섰다. 북쪽은 “남쪽이 6·15선언을 무시하는 마당에 6·15 선언의 산물인 개성공단에 특혜를 줄 수 없다”며 임금과 토지임대료의 대대적 인상 방침을 통보했다. 6·15 선언의 존중과 이행을 선언함으로써 기존의 ‘특혜’를 유지하든가, 아니면 인상안을 받든지 나가든지 선택하라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책임에서 남과 북 어느 쪽도 자유롭진 않다. 그러나 첫 시작이 이명박 정부의 6·15 선언과 그 실천강령인 10·4 선언 무시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한달여 만인 3월26일 통일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남북간 합의) 정신은 1991년에 체결한 기본합의서”라고 강조했다. 6·15와 10·4 선언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은 부도날 수밖에 없는 약속어음’ ‘6·15선언은 용공이적행위’라고 비난해온 보수 인사들을 통일부 장관이나 통일교육원장에 앉히려 하는 등 6·15선언에 터잡아온 대북기조의 전면 파기 시도도 서슴지 않았다.

북쪽의 반발은 강력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10월10일 발표한 담화에서 “6·15와 10·4 선언에 대한 태도는 북과 남의 화합과 대결을 가르는 시금석”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입장은 올해 새해 공동사설을 비롯한 각종 발표에서 일관되게 제기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쪽은 두 선언 이행을 남북관계의 근본문제로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쪽은 특히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등을 6·15 정신에서 벗어난 반북 대결정책의 현실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움직이려 하지 않고 있다. 처음엔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의 불가피한 조정기’로 치부했다. 최근 들어선 북쪽의 강경한 대외 기조는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내부정비 차원이라는 상황인식을 한층 강조하고 있다. ‘6·15와 10·4 등 남북간 합의정신 존중’, ‘남북간 모든 합의사항 존중’ 등으로 말의 색조를 조금씩 바꿨지만, 분명한 이행 의지는 확약하지 않고 있다. 14일엔 ‘6·15선언 9주년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내어 “(6·15공동선언의)합의사항을 지키지 않는 것은 오히려 북한”이라며 ‘공세 모드'로 전환했다. 6·15선언을 이끌어낸 주역인 임동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현 정부가 6·15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할 의지가 있는지 밝히라는 북쪽의 요구에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심히 안타깝다”며 “6·15선언을 존중하고 계승발전시켜 다시 화해와 협력의 길로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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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분석
“6·15이행의지 천명→특사 파견이 상책”

무력충돌 위기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를 다시 화해와 협력의 구도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6·15선언 존중과 이행의지의 분명한 천명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권고가 많다. 이를 통해 분위기를 조성한 뒤 대북 특사를 보내 남북관계 복원에 대한 북쪽의 호응을 끌어내라는 것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14일 “정부가 남북관계 재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특사 파견이 상책”이라며 특사 파견을 위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6·15, 10·4 두 선언의 합의 이행과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대북 적용 유보를 명확히 선언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한 대북특사를 맡았던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도 “만약 이 대통령이 직접 두 선언을 지키겠다는 선언을 하고 특사파견 등을 제안하면 북한이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단되거나 존폐 기로에 선 남북협력사업들을 활성화해 남북관계의 끈을 팽팽히 조여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임동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우리가 중단시킨 금강산관광사업의 즉각 재개, 인도적 지원 제공, 개성공단사업 활성화 조처 등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화를 유도해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개선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북쪽은 개성공단의 특혜 철회에 따른 비용 인상 방침을 통보하면서도 개성공단 기숙사 건설 등 개성공단 발전을 위한 조처의 필요성을 함께 거론하고 있다. 윤덕희 명지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에 중장기적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수립·제안하고 민간단체의 대북지원 활동을 적극 지원해 개방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이런 제안을 적극 검토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한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탄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에 맞서는 상황에서 정부가 국제공조 이탈로 비칠 수 있는 남북관계 개선 방안을 당장 내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 전 특보는 “민족공조와 국제공조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며 “정부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근본적이고도 포괄적인 문제해결에 나서도록 설득해 한반도 냉전을 끝내고 평화를 이룩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원제 기자

김상근 6·15남측위 위원장 .2009.6.12.마포 가든호텔.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김상근 6·15남측위 위원장 .2009.6.12.마포 가든호텔.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기념식 남북이 따로…참담하다”
김상근 ‘남측위’ 상임대표…“북쪽 감정의 골 너무 깊어”

“마음이 무겁고 참담하다. 비록 기념식을 열었지만, 기뻐하고 축하하긴 어려웠다.”

김상근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는 14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6·15공동선언 범국민실천대회를 열었지만, 6.15선언 9돌 기념행사 남북 공동 개최가 무산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2000년 이후 6·15선언 기념행사는 서울·평양·금강산 등을 오가며 남북 공동행사로 치러왔지만, 올해는 ‘어쩔 수 없이’ 남북이 따로 기념행사를 했다.

김상근 상임대표는 “당국끼리 대치하더라도 민간이 남북관계의 벌어진 틈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6·15 9돌 기념행사를 남북 공동행사로 금강산에서 하자고 북쪽을 설득했지만 감정의 골이 너무 깊었다”고 말했다. 북쪽 입장에선 아무리 민간분야라도 남쪽과 공동행사를 하기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신과 반발이 너무 컸다는 것이다.

김 상임대표는 악화된 남북관계의 해법은 ‘6·15정신으로 돌아가자’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화해협력 기조로 바꾸는 게 통일운동의 우선 목표지만 대정부 비판·설득에만 그치지 않고 ‘국민의 힘’을 표출해 정부가 대북정책을 바꾸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지역과 부문별로 국민에게 다가가는 사업과 여러가지 문화행사, 강연회, 토론회를 열어 6·15 선언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국민들 삶 속에서 구체적인 6·15 실천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6.15공동선언 9주년 범국민실천대회가 열린 14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여성연대 회원들이 대형 콜라주 작품으로 만든 6.15남북공동선언문을 내걸기 위해 옮기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6.15공동선언 9주년 범국민실천대회가 열린 14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여성연대 회원들이 대형 콜라주 작품으로 만든 6.15남북공동선언문을 내걸기 위해 옮기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그는 “통일문제에 대한 대중적인 참여와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라며, 국민들이 부담없이 참여해 통일운동의 재정적 기반을 넓힐 수 있도록 ‘6·15 실천사업비 월 615원 내기 운동’을 제안했다.

그는 북쪽에도 신중한 대처를 주문했다. 그는 “북쪽의 태도가 일견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북쪽이 계속 대응 수위를 끌어올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어떤 위험한 결과가 닥칠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7천만 겨레, 특히 남북 어린이들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북쪽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추가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상근 상임대표는 목회 활동을 하다 1970년대 기독교계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대외협력위원장,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을 지냈다.

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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