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차 아세안지역포럼(ARF)에 참가한 박근광 주타이 북한대사(왼쪽)가 23일 타이 푸껫 셰러턴호텔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잡으려고 자신의 앞으로 지나가자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푸껫/연합뉴스
ARF서 “대화는 반대 안해” 미국과 협상 뜻 시사
클린턴 “비핵화땐 평화체제 보장하고 경제 지원”
클린턴 “비핵화땐 평화체제 보장하고 경제 지원”
타이 푸껫에서 열린 아세안지역포럼(ARF)에 참석한 북한 대표단이 23일 미국 등이 제안한 ‘포괄적 패키지’와 관련해 “부시 정부 때의 ‘시브이아이디’(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를 그대로 파다 옮긴 것”이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리흥식 북한 외무성 국제기구국장은 이날 푸껫 셰러턴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밝혔다. 그러나 리 국장은 “우리는 대화를 반대하지 않는다. 절대 대화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강조해, 앞으로 여건이 되면 미국과 협상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와 제2차 핵실험 이후 협상에 나설 수도 있음을 이처럼 명확하게 밝힌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리 국장은 “핵폐기를 하면 (미국이) 이것저것 준다고 하는데,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이유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라며 “(미국이) 속에 칼을 품고 있는데 대화를 할 수 있겠냐”고 강조했다. 그는 “남조선엔 무력이 겹겹이 배치돼 있고 우리는 북녘의 작은 나라로 자체 방위를 해야 하지 않냐”며 핵 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또 그는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 “이미 복귀할 뜻이 없다고 선언했다”고 말했다. 이는 북-미 양자 대화를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북한 대표단에 이어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완벽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한다면 완전한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보장, 상당한 에너지·경제 지원 등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클린턴 장관은 이어 “북한은 비핵화 회담으로 복귀하고, 모든 현존하는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명시한 2005년 9·19공동성명을 이행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며 “북한을 고립시키고 행동의 변화를 강제하기 위해 북한에 의미있는 압력을 가하겠다”며 제재를 이어나가겠다는 점도 동시에 강조했다.
이번 아세안지역포럼 개최국인 타이가 각국의 의견을 모아 채택한 의장성명은 7항에서 “일부 국가의 장관들은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규탄했고, 유엔의 모든 회원국들이 안보리 결의 1874호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고 밝혔다. 이어 8항에서는 “북한은 미국 주도로 채택된 안보리 결의 1874호를 인정하지 않고 전면적으로 거부했다. 북한은 최근 악화되고 있는 한반도 상황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라고 밝혔고 6자회담이 이미 끝났다고 말했다”고 북쪽 주장도 함께 담았다.
한편,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려, 클린턴 국무장관이 최근 대북 강경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해 “허튼 말이 너무 많다”며 “때로는 소학교 녀학생 같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장마당에나 다니는, 부양을 받아야 할 할머니 같아 보이기도 한다”고 비난했다.
푸껫/이용인 기자 yy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