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경비정 동해서 남한 어선 1척 예인
며칠안 송환 관례…‘압박용’ 억류땐 추가악재
GPS 고장 항로 착오 추정
북 “해당기관에서 조사중”
GPS 고장 항로 착오 추정
북 “해당기관에서 조사중”
선원 4명이 탄 29t급 오징어 채낚기 어선 한 척이 30일 오전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갔다가 북쪽 경비정에 의해 북쪽 장전항으로 예인됐다. 앞으로 선원 송환 문제가 남북관계의 새 변수가 될 전망이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30일 “오늘 오전 6시17분께 강원 거진 선적 채낚기 어선 800연안호가 동해 공해상에서 조업 뒤 복귀 중에 제진항 북동쪽 20마일(36㎞) 인근에서 북쪽 경비정에 의해 예인됐다”고 밝혔다. 예인 당시 800연안호는 북방한계선을 7마일(12.6㎞)가량 넘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군 관계자는 “예인된 어선은 29일 오후 1시30분께 거진항을 출항해 동해 먼바다에서 오징어를 잡다가 인공위성항법장치(GPS) 고장에 따른 항로 착오로 북쪽 수역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며 “어선은 금강산 근처 장전항에 30일 오전 9시30분께 입항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이날 오전 두 차례 북한 경비정에 “우리 어선이 항로를 이탈해 귀측으로 넘어갔다. 즉각 남하조처를 취해주길 바란다”라고 상선공통 무선망으로 알렸으나 북쪽은 응답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날 오전 8시50분 남북 해사당국간 통신망을 통해 예인된 선박과 선원의 조속한 송환을 촉구하는 전통문을 보냈다. 북쪽은 이날 오후 남북 해사당국간 통신 과정에서 연안호에 대해 “현재 해당기관에서 조사하고 있다”고 남쪽에 알렸다. 어선에는 선장 박광선(54), 기관장 김영길(54), 선원 김복만(54), 이태열(53) 씨 등 4명이 탔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쪽은 남쪽 어선이 항로 착오로 북방한계선을 넘을 경우 일정한 조사를 한 뒤 며칠 안에 석방해왔다. 2005년 4월 ‘황만호’의 경우 선장이 만취상태에서 월북했으나, 북쪽은 5일 만에 송환했다. 같은해 12월 월선한 우진호도 18일 만에 돌려보냈다.
북쪽 선박이 넘어온 경우 남쪽 역시 귀순 의사가 없으면 모두 돌려보냈다. 천 대변인은 “올들어 북한 어선이 두 차례 서해 엔엘엘을 월선한 사건이 발생했으나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곧바로 귀환 조처했다”고 말했다.
북쪽이 이번에도 이런 전례를 따른다면 남북관계엔 긍정적 신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첫 남쪽 어선의 월선 사건에 대해 전임 정부 때와 동일한 송환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것은 곧 남쪽과의 추가적 관계 악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쪽이 이전과 달리 선원들의 불법월경 혐의를 조사하겠다며 송환을 미룰 수도 있다. 이 경우 북쪽의 속내가 ‘협상’이냐 ‘압박’이냐에 따라 남북관계도 출렁일 전망이다. 남쪽 당국과의 협상을 위한 카드라면, 꽉 막힌 남북관계에 이 문제를 계기로 하나의 채널을 더 열겠다는 뜻으로 볼 여지가 있다. 반면에 ‘대남 압박’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현대아산 직원 ㅇ씨에 이어 또 하나의 ‘인질’ 카드를 쓰겠다는 것이어서 남북관계에 추가 악재가 될 수 있다.
손원제 권혁철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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