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전 대통령 방북] 방북 이후 북미관계는?
‘6자’ 틀서 비공개 북미회담 유력
대북 적대 철회가 대화 조건될 듯
‘6자’ 틀서 비공개 북미회담 유력
대북 적대 철회가 대화 조건될 듯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면담으로 북-미 협상을 위한 유리한 국면이 조성됐지만, 실제 공식적인 대화가 시작되려면 풀어야 할 숙제가 몇 가지 남아 있다. 6자회담 틀을 둘러싼 그동안의 북-미 간 힘겨루기와 협상 테이블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의 주고받기 등이 그것이다. 두 사람의 면담 결과에 따라 이런 ‘대화의 전제조건’들은 높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낮은 장애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화의 조건’ 가운데 가장 까다로운 것은 회담 틀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달 23일 아세안지역포럼(ARF)과 신선호 유엔주재 북한대사의 발언, 외무성 대변인 담화 등을 통해 “6자회담은 종말을 고하게 됐다”며 일관되게 북-미 직접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양자대화를 거부하지는 않지만 북한에 6자회담 틀을 인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미국으로선 6자회담 틀을 포기하기 어렵다. 동맹과의 공조라는 외교적 가치뿐 아니라, 실리적으로도 협상 결과에 대한 책임과 비용 부담을 6자회담 관련국과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양쪽의 주장이 이렇듯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접점 형성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2차 북핵 위기 초기인 2003년에도 북한은 양자회담을, 부시 행정부는 3자나 4자회담을 주장했으나 결국 6자회담으로 합의가 모아졌다. “당시에도 6자회담이 결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서재정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였다. 부시 2기 행정부 말기에도 북-미 양자대화 결과를 6자회담에서 추인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북한이 6자회담을 받을 수 없다고 하는 이유를 보면, 자신들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라며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무엇을 얼마나 받아낼 수 있는지에 대해 전망이 서면 시작은 비공개 북-미 대화로 하되 모양새는 6자회담 틀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다른 대화의 조건은 ‘체면 세워주기’다. 이언 켈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의 북-미 직접대화 요구에 대해, 지난달 27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야 한다”며 “그 행동은 2005년 9·19 공동성명 안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성의 표시를 해달라는 뜻이다.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힌 북한이 어느 수위의 성의 표시를 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현시점에선 대북 제재가 적대시 정책의 가장 큰 상징”이라며 “북한이 대북 제재 철회나 완화를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화의 조건이라는 관문을 넘어 협상이 시작되면 ‘포괄적 패키지’를 놓고 치열한 샅바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핵무기 및 핵프로그램 폐기와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대가, 즉 북-미 관계정상화와 평화체제, 대북 경제지원 등을 북-미 양쪽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게 배열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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