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위원장 권한 더욱 커져…‘급변사태설’에 제동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국제사회에 건재를 과시한 절호의 기회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을 만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외형상 예상보다 건강해 보였다. 여전히 지난해 건강이상설이 나오기 전보다 수척했고 머리숱도 많이 줄어들긴 했다. 하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얼굴 가득 미소짓는 모습은 ‘시한부’라는 일각의 평가를 잠재우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물론 건강상태에 관한 외부의 의혹을 의식한 의도적 연출이었을 수 있다. 사진에 손질을 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짧아도 2~3시간에 이르렀을 접견과 만찬을 직접 주재한 것은 그가 일상 활동에 심각한 장애를 보일 정도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앞으로 1년 정도 밖에 살지 못할 것”(<워싱턴타임스>) “환각증세설”(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등 그의 건강을 둘러싸고 난무하던 부정적 관측에도 제동을 걸었다. 김 위원장의 생존이 체제의 내구력과 직결되는 북한 체제 특성상 이는 곧 워싱턴과 서울을 떠돌던 ‘북한 급변사태 임박론’에도 어느 정도 고삐를 죈 셈이다.
김 위원장은 또 접견과 만찬에 핵심 측근들을 대동하고 곧바로 미국 여기자에 대한 ‘사면’을 지시했다. 김 위원장 평소의 통치 방식이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국정을 직접 장악·지휘하고 있음을 은연중 드러낸 것이다. 그동안 일각에선 북한이 김 위원장의 건강악화 속에 셋째아들 김정운으로의 후계구도 확립을 위한 업적쌓아주기와 내부단속용으로 ‘핵보유’ 등 대외 강경책을 구사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강경 군부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다는 관측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이번 만남으로 김 위원장은 여전히 자신이 북한의 굳건한 최고통치자로서 모든 정책결정을 총괄하고 있음을 안팎에 과시했다.
김 위원장이 국방위원장 자격으로 ‘사면’을 지시한 것은 지난 4월 12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의 헌법개정 결과 국방위원장의 권한이 더욱 커졌음을 말해준다. 이전 헌법은 특사권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 귀속된다고 규정했는데, 이번에 북한 매체들은 “헌법 103조에 따라 특사 실시에 대한 국방위원장의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손원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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